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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예수와 함께 처형당한 강도의 이야기

등록 2019-08-30 06:01수정 2019-08-30 19:59

밤의 양들 1, 2
이정명 지음/은행나무·각 권 1만1500원

이정명(사진)의 소설 <밤의 양들>은 예수의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일주일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의 오른쪽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다. 지상에서 예수의 마지막 축복을 받은 이 인물은 성경 속에 몇 줄로 언급되었을 뿐 철저히 잊혔다. 작가는 그에게 ‘마티아스’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예수와 그의 관계에 허구의 살을 붙인다.

유월절을 일주일 앞둔 예루살렘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성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대범한 범죄는 희생자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관계된 이들이며, 등가죽이 끔찍하게 도려내 졌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두 사람이 투입된다. 성전수비대 대장 조나단은 로마인 백인대장을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밀정 마티아스에게 사건을 맡기고,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온 로마 총독 빌라도는 로마인 현자 테오필로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의 핵심을 향해 다가가며, 그 과정에서 경쟁과 대결을 펼치다가는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 자신이 살인자인 채 살인자를 쫓았지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청년. 그는 진실로 자기 죄를 참회하고 고백하였지만 용서받지 못한 채 십자가에 매달렸다.”

에필로그에서,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을 다시 찾은 늙은 현자 테오필로스는 마티아스를 이렇게 기억하고 평가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해 단신으로 거친 세파를 헤쳐 온 마티아스는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르고 법의 심판에 맡겨지지만, 거칠고 잔인한 외양 아래에는 진선미를 향한 믿음과 추구가 있다. 불교에서라면 선근(善根)이라 부르는 자질이다. 이 소설은 마티아스와 테오필로스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임과 동시에 감추어졌던 마티아스의 선근이 계기를 만나 발현하게 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작가는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중심으로 한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비롯해 로마와 유대, 예루살렘 등에 관한 연구서 등을 참조해 2천여년 전 시공간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사건 핵심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가는 추리적 전개, 그리고 작가 특유의 영화적 문법이 독서의 속도감을 높인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어둠과 빛이 함께하며, 신과 인간이 동거하는 도시,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섞이고 진실과 음모가, 범죄와 속죄가 부딪치는 성읍” 예루살렘은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하겠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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