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마음의 정치학 1, 2, 3 배병삼 지음/사계절·각 권 3만2000~3만5000원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03년~기원전 221년)의 사상가인 맹자(기원전 372년 추정~기원전 289년 추정)의 사유가 담긴 <맹자>는 우리말로 된 역주서와 해설서들도 많다. 그런데도 <맹자>는 새롭게 옮겨지고 풀어 써진다. 전쟁으로 사회가 붕괴했던 시기에 새로운 사회를 꿈꿨던 사상가들을 재조명해 이 시대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실마리를 얻고자 해서일 터다. “맹자가 두려워한 당시의 사회는 환과고독(鰥寡孤獨)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아내 없는 홀아비, 남편 잃은 홀어미, 고아, 독거노인이죠. 그런 상황에서 맹자는 더불어 사는 삶을 모색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혼술’ ‘혼밥’이라는 말이 있고, 독거노인은 고독사합니다. 우리 역시 더불어 사는 삶의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죠.”
<맹자, 마음의 정치학>을 펴낸 배병삼 교수는 이 책에서 맹자와 유교에 덧씌워진 오해와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병삼(60)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이번에 <맹자, 마음의 정치학>을 펴내고, 지금 <맹자>를 읽어야 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 석사 과정에서 마키아벨리를 공부한 배 교수는 박사 과정 때 동양 고전으로 공부의 방향을 틀었다. “1980년 광주항쟁은 큰 충격이었죠. 학생운동을 하다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고 81년도 2학기에 복학해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부터 다시 읽었는데, 어떤 목마름이 해소되지 않았어요. 한국 땅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88년 박사 과정 때 서당(유도회 부설 한문연수원)에 다니면서 <논어> <맹자>를 읽었는데, <논어> <맹자>가 바로 정치학 책이었습니다.” 2002년 <논어> 주석서를 내고 한국사상사를 공부하는데 정도전(1342~1398) 앞에서 탁 걸렸다고 한다. “조선은 <맹자>의 나라였습니다.” 그렇게 <맹자>와 씨름하고, 출판사에 <맹자> 관련 책을 써보겠다고 한 게 10년 전이라고 한다. “<맹자>를 제대로 풀어내려면 법가·묵가·종횡가 등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죠.”
배 교수는 이번 책에서 맹자와 유교에 덧씌워진 오해와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자 했고, 그 점이 이 책이 이전의 <맹자> 관련 책들과 구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맹자한테 씌워진 게 위민(爲民)이니 민본주의니 하는 것인데, 맹자의 사상은 위민도 민본도 아닌 철저한 여민(與民)주의입니다.” ‘위하지 말라, 다만 함께하라’가 맹자 정치사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배 교수는 유교에 대한 오해가 <맹자> 이해를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분석해 유교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은 신민과 자식, 아내가 군주, 아비,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노예의 윤리, 일방적인 군주 독재의 정치 논리로 한(漢) 제국의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반면, <맹자> ‘등문공 상’ 편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은 부모와 자식, 군주와 신하, 남편과 아내, 윗사람과 아랫사람, 친구 사이의 상호 존중과 소통을 강조하는 상호적인 쌍방의 윤리이고, 이것이 공자와 맹자의 본래 뜻이라고 강조한다. 지배와 복종의 윤리인 ‘삼강’에서는 통치자 중심의 ‘위민’ 정치론을, 상호성을 특징으로 하는 ‘오륜’에서는 ‘여민’ 정치론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배 교수는 “오륜의 관계론이 유교의 정통이며, 삼강은 청신한 본래 유교가 타락한 형태”라고까지 말한다. 책무를 방기한 군주를 쫓아낼 수 있고, 부모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효’라는 맹자의 주장은 오륜을 토대로 삼는다.
<맹자, 마음의 정치학>을 펴낸 배병삼 교수는 이 책에서 맹자와 유교에 덧씌워진 오해와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배 교수는 “동양 고전은 두괄식”이라며, <맹자>의 핵심은 첫머리에 담겼다고 말한다. ‘양혜왕 상’ 편이다. 맹자를 만난 양나라 혜왕이 “노인장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와 주셨는데, 아마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안을 가지고 계시겠지요?”라고 묻자,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배 교수는 “오늘날 자본주의는 자기가 누굴 해치는지도 모른다. 또 죽어가는 사람도 죽인 사람을 모른다. 모르는 채 남을 해치고, 누가 저를 죽이는지 모르는 채 죽는다. 이익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익을 뜻하는 이(利)에 칼(刀) 자국이 선명한 것이 섬뜩하다”고 했다. ‘양혜왕 상’ 편에는 ‘여민해락’(與民偕樂),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연목구어’(緣木求魚),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등 널리 알려진 얘기들이 많다. “일정한 생업(항산)이 없어도 일관된 마음(항심)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사(士)뿐입니다.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사(士)와 백성(民)은 구별된다. 오늘날에는 스스로를 사(士)로 내세우면서 ‘무항산무항심’을 구실 삼아 막대한 돈벌이에 나서는 ‘사이비’(似而非·‘진심 하’ 편)들도 있다.
책은 동서고금을 오가며 방대한 자료를 활용해 <맹자>를 해설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와 접목시킨다. 배 교수는 특히 성호 이익(1681~1763)의 <맹자> 주석이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지기가 공자를 가리켜 ‘안 될 줄 알면서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도전하는 게 인문학의 길이고, 사람다운 삶을 보존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