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지음/현대문학·1만1200원 이승우(사진)의 소설 <캉탕>은 대서양의 작은 항구를 배경 삼는다. 책 제목 ‘캉탕’이 바로 이 가상의 장소의 이름. 소설에서 “세상의 끝”으로 표현되는 이 외진 곳에서 세 남자가 조우한다. 주인공인 40대 초반 남자 한중수는 귀울림 증상으로 고통 받다가 정신과 의사이자 친구인 제이(J)의 권유로 캉탕에 온다. 이곳에는 제이의 외삼촌 최기남이 ‘핍’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째 살고 있다. 최기남-핍은 허먼 멜빌의 해양소설 <모비딕>에 매료돼 고래잡이 배를 탔던 인물. 2년 가까이 바다를 떠돌던 청년 핍은 어떤 연유와 경로에 의해서인지 캉탕에 내렸고 선술집 딸과 결혼해 아예 이곳에 정착했다. 그러나 한중수가 찾아왔을 때 핍은 이미 늙은 나이였고 부인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캉탕에서 한중수는 제이의 조언을 좇아 하염없이 걷는 행위로 귀울림을 다스리고 머릿속을 비우고자 한다. 그는 또 예전에 핍이 운영했던 선술집 겸 숙소 ‘피쿼드’에 들러 맥주를 마시고는 하는데, 그러던 중 그곳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선교사 타나엘과 교분을 트게 된다. 알고 보니 타나엘은 30여년 전 사귀었던 여성의 주검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수사 당국의 출두 요구와 교단의 선교사 직무 정지 및 소명 요청을 받아 놓은 상태. 요컨대 세 사람은 각자의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채 이방인으로서 캉탕에 와 있는 것. 다른 듯 닮은 그들의 과거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그 과정에서 <모비딕>은 핵심적인 상징으로 구실한다. 선술집을 그만둔 핍이 처박힌 방부터가 <모비딕>의 특정 공간을 닮았다. “그가 은둔해 있는 1층은 흰고래에 미친 선장 에이해브가 틀어박혀 지낸 선실처럼 음침하고 불길해서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곳이었다.” 최기남의 바뀐 이름이 <모비딕>에 나오는 흑인 소년 선원의 이름이라면, 한때 그가 운영했고 지금은 타나엘이 머물고 있는 선술집 겸 숙소 피쿼드는 에이해브 선장과 핍 그리고 선원 이슈메일 등을 태우고 흰고래를 쫓던 포경선의 이름이다. 이처럼 <캉탕>에는 <모비딕>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으며, 이와 함께 세이렌의 이야기 또한 중요한 모티브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두 이야기에 바치는 이승우의 오마주라 할 만하다. 아니, 반드시 그 두 이야기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바치는 헌사라고나 할까. 소설에 나오는 대로 바다란 곧 이야기의 바다이니까. “바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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