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휴스턴 지음, 이은진 옮김/김영사·2만4800원 독자는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잠긴다.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뻐근해진다. 오늘날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전자책(e-book)도 대중화했지만, 종이책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가장 존귀한 사물로 대접 받는다. 향긋한 종이 냄새, 바스락거리는 소리, 책장을 휙휙 넘기면 이는 산들바람의 감촉이 좋고, 마음에 와 닿는 대목에 천천히 밑줄을 긋는 것도 종이책만의 묘미다. 영국의 애서가 키스 휴스턴의 <책의 책>은 ‘책’에 관한 책, 1500년 넘게 이어져 온 “묵직하고 매혹적인 공예품”의 역사를 보여주고 그 살아 숨 쉬는 물성을 예찬하는 책이다. 원제가 그냥 ‘책’(The Book)이다. 580여쪽의 두툼한 이 책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로 가득한 ‘책의 향연’ 같다. 더 읽을거리와 참고도서 목록이 전체 분량의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방대한 자료 조사와 문헌 연구가 뒷받침됐다. 제1부 ‘종이’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를 거쳐 종이에 이르기까지 필기 재료의 변천사를 훑어본다. 양피지를 선호한 중세 유럽의 수도사들은 이교도들이 즐겨 쓰는 종이를 노골적으로 폄훼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종이에 쓴 정부 문서는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다. 2부 ‘본문’에선 문자의 출현부터 인쇄기의 발명까지 지식 생산의 물적 토대가 완비되어가는 과정을 살핀다. 3부 ‘삽화’는 필경사에서 동판 조각사와 식자공까지, 책의 디자인과 제작에 스며든 예술과 기술을 스케치한다. 4부 ‘형태’에서는 밀랍 서자판에서부터 제본과 장정, 판형의 유래까지 책의 겉모습에 감춰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펼쳐진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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