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지성 팀장의 책거리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이 모여 그들의 지혜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봉헌하며 새겨 넣은 게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와 함께 ‘그 어떤 것도 지나치지 않게’(Meden agan)였다고 합니다. <논어> ‘선진’편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이라는 말이 나오죠.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지나침’을 경계합니다.
그리스의 중용 사상을 연구한 책으로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적도(適度) 또는 중용의 사상>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한층 작은 것들에 알맞은 정도(적도)를 무시하고 한층 큰 것들을 부여한다면 (…) 아마도 모든 것이 뒤집어지거나 파멸할 것이며, ‘히브리스’(hybris)에 빠져듦으로써 (…) 일부는 히브리스의 산물인 올바르지 못한 상태(불의)로 내닫습니다.”(플라톤의 <법률>) 관직 임명 때 그에 상응하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히브리스’는 알맞은 정도 즉 중용을 뭉개는 것으로, 오만·무례함·폭행 등 지나침을 뜻합니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히브리스를 저지르고 파멸을 맞습니다. 히브리스에 빠지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죠. “젊은이와 부자들이 히브리스를 저지르는 자들인데, 히브리스를 저지름으로써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이에 대한 앙갚음은 또 다른 히브리스가 아니라 정당한 ‘보복’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갖고 있으면 히브리스를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른바 ‘갑질’도 그런 게 아닐까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이후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며 히브리스라는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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