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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최고 ‘스펙’ 쌓고도 배반당한 ‘요즘 애들’

등록 2019-09-27 06:00수정 2019-09-27 19:57

밀레니얼 세대의 탄생부터 성장, 지금 모습에 이른 과정 분석
어릴 때부터 죽어라 공부한 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밀레니얼 선언
완벽한 스펙, 끝없는 노력 그리고 불안한 삶

맬컴 해리스 지음, 노정태 옮김/생각정원·1만8000원

엑스(X) 세대, 와이(Y) 세대, 제트(Z) 세대, 밀레니얼 세대…. 태어난 특정 시기를 기준으로 젊은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나눠 이름 붙이고, 그 특징과 함께 다른 세대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일이 종종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90년대생’이 주목을 받는 한편 ‘386 세대’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정도로 ‘세대론’이 유행하고 있다.

<밀레니얼 선언>은 미국에서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서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임 기간 태어난 이들을 ‘밀레니얼’이라고 부르며, 이 세대를 탐구한 책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1990년대생을 밀레니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저널리스트인 지은이 맬컴 해리스가 1988년에 태어난 터라, 밀레니얼이 쓴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원제는 ‘요즘 애들’(Kids these days)인데, ‘인적 자본과 밀레니얼 만들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이들이 어떤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는지를 가정·학교·국가, 그리고 넓게는 자본주의 체제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바탕 삼아, 치열한 경쟁을 하며 최고의 ‘스펙’을 쌓은 이들이 어떻게 배반당했는지 살핀다.

감시와 경쟁으로 만들어진 밀레니얼

“밀레니얼들이 다른 세대와 어떻게든 구분되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부모 세대 혹은 조부모 세대보다 더 (혹은 덜) 진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과 다른 것은 그들이 세상의 작동방식을 바꿔놓았고, 그 결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초·중등학교의 학생 때부터 어떻게 “겁을 먹고 움츠러들도록 길들여진” 밀레니얼들이 만들어지는지 추적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교육이라는 가면”을 쓰고 아이들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다. 미국 어린이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숙제하면서 보낸다. 1981년부터 1997년까지 6살에서 8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초등교육에서 공부에 투입되는 시간은 146% 증가했고, 1997년부터 2003년까지는 32% 늘었다고 한다. “대학 입학은 중등교육뿐 아니라 오늘날 미국 아동기 전체의 핵심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슬픈 진실이 있다. 대학 입학은 젊은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젊은이들의 고된 노력에 부응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 말이다.”

‘인적 자본’의 논리가 미국 교육 체계의 근간을 이룬다. 아이들이 인적 자본이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투자’가 된다. 소중한 자산인 만큼 부모들은 위험도 관리해야 한다. “지난 20~30년간의 추세를 살펴보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집에 묶어둔 채, 부모가 선별한 아이들에게만 노출시키고,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심지어 무슨 간식을 먹을지도 골라준다.” 통제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 좋은 부모라는 양육 규범이 자리 잡았다. “아이의 일정과 시간을 직접 통제하고 책임을 지며 과보호하려 드는 상류층 엄마(아빠)가 ‘헬리콥터 부모’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헬리콥터 부모는 아이의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학교들은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학교는 공부에 방해된다며 점점 더 많은 아이를 교실 밖으로 몰아낸다. 초·중등학교에 정학당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다. “학교란 이후의 경력을 위한 준비를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처벌을 두 번째 목표로 삼는, 학생들의 규율을 다잡고 단속하는 기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밀레니얼들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감시를 받으며 자라난 세대”이기에 자기 표현을 두려워하며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밀레니얼들은 고등교육을 받으면 이후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얻고 여가도 누릴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미국의 고용주와 정책결정자들은 대학이 제공하는 고등교육을 거의 모든 사람이 받도록 만들 기세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나 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뚝 떨어졌다. “2007년 이후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그 후 졸업한 대졸자들의 실업률 및 불완전취업률은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그 결과 역사상 가장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그 부채에서 벗어나게 해줄 듬직한 일자리는 없는 세대가 탄생했다.” 치솟은 등록금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4년의 한 연구 결과는 일반적인 믿음과 상반됐다. 40살 이하 가구를 대학에서 학사 이상의 학위를 받았는지 여부와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넷으로 나누어 살펴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자금 대출을 받은 가구의 순자산의 중위값은 8700달러,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대출을 받지 않은 가구는 1만1000달러였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 졸업자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보다 순자산이 적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어릴 때부터 죽어라 공부하고 스펙을 쌓은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사용자 쪽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직업 시장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는 일에 투자하라고 유혹한다. 그렇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노동자가 충분한 훈련을 받은 상태라면 기업이 돈을 들여 노동자를 훈련시킬 필요가 없다. ‘인적 자본’의 개발 비용은 점점 더 경쟁에 참여하는 개인의 몫이 되고 있다.

‘불안정한 존재’가 되어버린 밀레니얼

“좋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피하고 싶은 질 낮은 일자리는 더욱 열악해졌으며, 좋은 일자리건 나쁜 일자리건 이전보다 불안정해졌다.” 저자는 미국내 일자리의 변화를 한 단어로 표현할 때 ‘불안정성’보다 나은 표현은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체가 불안정한 존재”가 됐다. 그렇다고 밀레니얼은 집단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조직도 만들지 않는다. 24살 이하 노동자들 중 노조에 가입한 이들은 4.2%인데, 55살 이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라고 한다. “(밀레니얼은) 구조적·법적·정서적·문화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노동조합을 거부하도록 길들여져왔다.”

밀레니얼들이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살게 될 가능성도 낮아졌다. 1940년대생들은 90% 이상이 부모보다 높은 소득을 올렸으나, 밀레니얼들은 50% 정도다. 부모보다 잘살게 될 가능성이 반반인 셈이다. 그렇다고 복지 혜택을 누리기도 어렵다. 밀레니얼들은 노년층과 견줘 자신들이 받을 혜택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을 안다. 2104년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에서 자신들이 약속된 만큼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밀레니얼은 6%에 그쳤다. 밀레니얼의 51%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감시를 받으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스펙을 쌓았는데도 가난해진 밀레니얼들은 저항할 줄 모르는 지극히 효율적인 인적 자본으로 성장했다. 부모 세대는 이들에게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막았다고!” 하며 뻐기지만, 밀레니얼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은 부모 세대들이었다. 저자는 우울한 미래 전망을 제시하며 나름의 해법을 고민하지만 뚜렷하지 않다. 소비자 정치(불매운동), 선거 참여, 자원봉사주의, 시위 등의 저항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러나 어찌 됐건 밀레니얼들은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며, 우리는 후에 닥쳐올 일들에 대해 많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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