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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음이 자라는 소리, 이까짓 거!

등록 2019-10-04 06:00수정 2019-10-04 20:31

누구나 겪었을 법한
비 오는 날의 이야기
성장에 대한 모두의 동화
이까짓 거!
박현주 지음/이야기꽃·1만3000원

누구나 한 번쯤은 비를 맞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좀 묘한 경험이다. 우산이나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무대에 오른 사람마냥 멋쩍은 기분이 한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옷이 제법 젖어 걱정이나 부끄러움 따위 내려놓고 나면 감옥에서 벗어난 탈옥수처럼 해방감 같은 게 찾아온다. 새 책 <이까짓 거!>는 이런 묘하지만 흔한 일상의 경험 안에 아이의 성장을 응축해 담아내고 소나기 같은 여운으로 마무리를 한 그림책이다.

<이까짓 거!>의 큰 매력이라면 매순간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고운 비단 펼치듯 섬세하게, 또는 마치 나의 일상을 옮긴 것처럼 정겹게 그려낸 그림들이다. 비 내리는 창밖을 걱정스레 보는 아이가 그려진 앞면지부터 그렇다. 우산 쓰고 삼삼오오 떠나는 친구들을 우두커니 보는 아이에게 “마중 올 사람 없니?” 하고 묻는 아저씨는 어디선가 본 사람만 같다. 아이는 괜한 자존심인지, “엄마가 오실 거예요”라고 거짓말을 하고 만다. 홀로 남은 아이 옆으로 작년 같은 반 친구, 홍준호가 온다. 아이의 어깨에 걸려 축 늘어진 가방은 동네 꼬마들에게서 본 익숙한 귀여움이라 웃음이 난다. “넌 안 가냐?”며 냅다 뛰기 시작하는 준호를 따라 아이도 경주하듯 빗속을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학원에 도착한 준호는 등장할 때처럼 시크하게 혼자 올라가고. 다시 홀로 남겨진 아이의 시점으로 본 우산으로 가득 찬 회색 거리, 그리고 이제는 힘을 얻어 혼자 질주하는 아이를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 등은 모두 마치 정교하게 짜인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환한 노랑으로 가득 찬 마지막 장면과 그에 이은 뒷면지까지 이런 매력은 쉬이 그치지 않는다.

이런 그림의 바탕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 일상에 대한 관찰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의 전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박현주 작가는 <나 때문에>에선 피곤하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어른들의 섣부름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비밀이야>에선 애완 동물을 키우고 싶은 동생을 귀찮게 대하다가 점차 펼쳐지는 상상 속에서 공모자가 되어 버린 누나의 이야기를 깜찍하게 펼쳤다. 난감한 상황에 쉽게 울적해 하다가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예기치 않은 경험을 통해 훌쩍 마음이 크는 성장의 고갱이를 담았기에 이 책은 어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흠 아닌 흠이 있다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초등 1~2년보다 오히려 어른에게 더 좋은 책일 것 같다는 정도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그림 이야기꽃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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