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초등학교 3학년 때 교실 뒤에는 키 높은 책꽂이가 여러 개 있었습니다. 도서실이라 부르긴 했지만 너무 옹색했고 책 대출도 되지 않았으니 ‘책 창고’ 정도로 표현해야 할까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엔 책꽂이들 틈새에 숨어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잡담을 하곤 했습니다. 오래된 책의 냄새를 맡으며 편안하게 졸기도 했고요.
중고등학교 땐 시립도서관에서 책읽기보다 주로 학교 공부를 했습니다. 친척 언니를 따라 도서관에 다니면서 라디에이터 위에 도시락을 얹어놓고 데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때 도서관은 책읽기보다 사람 낚는 낚시터였습니다.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을 억지로 끌어내 술을 먹거나 최루탄 터지는 학교 광장으로 데려가곤 했습니다.
도서관을 온전히 누린 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가끔 구립 도서관에 가서 책을 꺼내보고, 경치도 즐기곤 합니다. 제가 주로 찾는 도서관은 천장이 높고 창이 커서 눈이 오거나 단풍이 들 때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요즘은 주로 무슨 책이 많이 대출되나 은근 ‘탐색’도 합니다.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을 보면서 사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젊은이들이 도서관을 신뢰하는 미국 사회가 상당히 부럽더군요. 한국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도서관이 독서동아리 행사를 열고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기적’도 많이 생겼습니다. 물론 건물과 책의 노후화 등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손잡고 해결해야 할 예산 문제가 많습니다만, 희망을 품어봅니다.
내친김에 <도서관 여행하는 법>(유유, 임윤희)도 권합니다. 이 책의 부제는 ‘앎의 세계에 진입하는 모두를 위한 응원과 환대의 시스템’이군요. 지금은 고요와 평화가 어느 때보다 간절한 시대, 도서관에서 응원과 환대의 기운을 얻으시길 빌겠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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