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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주주의 탈을 쓴 ‘도둑 정치꾼’들의 위협

등록 2019-10-11 10:49수정 2019-10-11 11:49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부키·2만원

20세기 말, 냉전이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끝났을 때, 서구 자본주의 진영은 ‘역사의 종말’을 호언하며 환호했다. 전체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를 확신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걸 믿는 이는 없다. 러시아·중국·터키·이집트·브라질 등 곳곳에서 ‘스트롱 맨’이 선거로 집권해 독재적 권력을 행사한다. 유럽에선 포퓰리즘과 착종한 극우 세력이 노골적인 파시즘을 표방하며 득세하고, 미국에선 부동산 기업가 출신의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혐오와 배제와 불평등을 부추기며 ‘가짜뉴스’를 외친다. 권위주의 정권은 여전히 건재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동유럽 근현대사를 천착해온 미국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서 독창적 개념인 ‘필연의 정치학’과 ‘영원의 정치학’을 열쇳말 삼아, 오늘날 민주주의를 가장한 소수의 권위주의 집단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대중을 속이는지를 섬뜩하리만치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냉전 시기 ‘진보’와 ‘번영’에 대한 집단적 주술인 ‘필연의 정치학’이 붕괴되자, 사람들은 이제 영광스럽다고 착각하는 과거에 대한 대중의 갈망과 동경을 착취해 국가를 지배하는 집단의 ‘영원의 정치학’에 손쉽게 빠져든다. 유라시아 제국을 내세운 푸틴의 장기 집권과 우크라이나 침공, 영국의 브렉시트 대혼란, 독일의 극우 정당 득세, 미국의 트럼프 당선까지 최근 몇십년의 숨가쁜 역사가 그렇다.

지은이는 “우리가 참된 것과 매력적인 것의 차이를 더는 구별하지 못할 때 권위주의가 시작된다”고 경고한다. 바로 그 순간이 민주주의로 포장됐으나 실은 ‘비(非)자유로 가는 길’(책의 원제)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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