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내가 선배도 번쩍 들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후배가 말했습니다. ‘여성여성’ 하던 그의 팔뚝엔 어느새 굵은 근육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평소에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멋있게 몸을 단련하고 체력을 길렀는지는 몰랐습니다. 그 후배 앞에서는 전보다 조금 더 조심하기로 했습니다. 언제 번쩍 들릴지 알 수 없으니까요.
또 다른 여성 후배는 잘 뜁니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도 뛰었다는 ‘만행’을 느닷없이 고백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난 다음 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노년의 의사 선생님이 한마디로 “운동 부족”이라고 진단하더랍니다. 그 친구는 도대체 얼마나 더 뛰어야 건강해질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 친구 앞에서도 달리기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제 한번 같이 뛰자고 할지 모르고, 무엇보다 언제 멈추자고 할지도 모르겠으니까요.
진지하게 몸을 단련하는 여성들의 책이 비슷한 시기에 여러 권 출간되었습니다. 건강에세이 <여자는 체력>(메멘토)을 쓴 여성주의 운동 코치 박은지씨는 성폭력 위협 없이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분투해온 분입니다. ‘운동 유목민’을 자처하는 작가 이진송씨 또한 운동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배제, 혐오문제에 대해 비껴가지 않네요.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다산책방)
오늘은 ‘마감 체력’이 많이 떨어진 듯하군요. 모쪼록 안전하고 건강하게 늙을 수 있게, 운동화 끈부터 단단히 묶어야겠습니다. 요가 수행자로도 유명한 배우 문숙씨가 쓴 <위대한 일은 없다>(샨티)를 보면서, 그처럼 한 발 한 발 주의 깊게 내디디며 작은 일을 위대한 마음으로 해내는 노년기를 맞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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