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정원
브라이언 라이스 지음, 이상희 옮김/밝은미래·1만3000원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운동할 때나 여행을 갈 때나 음악을 들을 때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나 언제나 함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정원에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정원 주인인 여우 에번은 꽃과 나무, 채소를 기르는 솜씨가 좋았다. 그러나 에번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멍멍이 덕분이었다. 에번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담겨 있는 멍멍이의 갈색 눈동자는 에번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었고, 에번의 내면을 꽉 채운 기쁨은 그의 손길이 닿는 식물마다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가 그해 가장 뛰어난 그림책을 낸 작가에게 주는 칼데콧 아너상 수상 작가(2019년)인 브라이언 라이스는 짧고 함축적인 문장에 따뜻한 그림을 얹어 에번이 겪는 사랑과 우정, 상실과 좌절 그리고 그 뒤에 살며시 찾아오는 희망을 보여준다. 에번과 멍멍이의 행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멍멍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끝이 난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에번은 무너진다. 갑자기 분노가 밀려온 어느날 아침, 닥치는 대로 베고 잘라 정원을 망가뜨린다. 에번은 이젠 폐허에서 자라난 잡초를 돌보기 시작하고, 풍성한 에덴동산 같았던 정원은 할로윈 축제 무대 같은 쓸쓸하고 기괴한 곳으로 돌변한다. “에번의 정원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 될 수도,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곳이 될 수도 있어요. 에번이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했다. 거친 풀더미 사이로 어린 호박덩굴 순이 자라고 있었다. 작가는 “보송보송한 솜털 잎, 가늘고 길고 꼬불꼬불한 덩굴손”이라고만 묘사했지만 독자들은 금세 짐작할 것이다. 그 가냘픈 순은 멍멍이의 보드라운 털과 따뜻한 입김과 닮았다는 걸. 모처럼 마음 먹고 정성껏 기른 에번의 호박은 읍내에서 열린 호박 품평회에서 3등을 차지한다. 심사위원은 말한다. “상금 10달러 또는 아기 동물이 든 상자, 둘 중 하나를 고르세요.”
서슴없이 상금을 선택하고 돌아선 에번. 그러나 상자 속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작가는 여기에서 말을 멈춘다. “무심코 상자를 들여다봤지요.”
책장을 덮기 직전, 빨간 트럭을 몰고 가는 에번의 뒷모습이 나온다. 집으로 가는 길. 그러나 이젠 혼자가 아니다. 그의 정원은 더 이상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4살 이상.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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