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베스트셀러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낸 동화작가 고정욱씨가 20여년 만에 <아주 특별한 우리 형2>를 냈다. 14일 서울 영등포구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휠체어를 굴리며 웃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꼬마 종민이가 얼마나 컸을까,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펼쳤더니, 어머나, 종민이는 겨우 한살 더 먹었다. 여전히 억울한 건 못 참고 부아를 터뜨리지만 좀더 생각이 많아진 초등학교 4학년. 종민이 형 종식이도 이제 16살이다.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호평 받으면서 장애인을 소재로 한 어린이 문학에 신호탄을 쏘아올린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 출간된 게 1999년. 뇌성마비 장애인인 형 종식과 철부지 동생 종민이 딱 한살 먹은 소년 형제의 모습으로 2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2>(대교북스주니어). 그동안 300여권 가까운 작품을 쏟아내며 베스트셀러 동화 작가로 자리잡은 고정욱(60)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났다.
‘환갑 전까지 300권!’을 채우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그에게 어떻게 그리 다작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내가 확실히 동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동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어른들의 세상이잖아요? 나는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어릴 적부터 확실히 알았으니까요.”
<아주 특별한 우리 형> 1권은 종민이가 친척 할머니 댁에서 따로 살던 여섯살 터울의 형 종식이를 처음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밥알을 깔끔하게 못 넘기고 침을 흘리고 말이 어눌한 형이 너무 부끄럽고 싫어 가출까지 하지만 변화가 찾아온다. 돌멩이처럼 느닷없이 날아오는 사람들의 편견을 목도하면서, 그럼에도 의연한 형의 모습을 보면서 종민이는 많이 배운다. 2권에서도 형제가 마주한 세상은 녹록지 않다. 장애인 형을 뒀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은 종민이를 따돌린다. 종식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자격증을 따지만 불분명한 발음과 뒤틀리는 몸 때문에 일을 얻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가 20년 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1권에서 종식이는 생각 깊고 사랑이 많은 친척 할머니 집에서 자라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부모님·동생과 함께 살게 된다는 설정이죠. 또 자기를 보호하려다 동생이 크게 다치자 죄책감에 스스로 복지시설에 입소하기도 하고요. 장애인 전용 주차장을 비장애인이 사용하면서 ‘왜 장애인이 돌아다니냐’고 되레 호통치는 장면도 나오죠. 그동안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겼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됐어요. ‘탈시설’ 논의도 뜨거워졌고요. 나도 그 변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50만부 넘게 팔린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비롯해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꼴찌 없는 운동회> 등 고 작가가 쓴 장애 관련 작품은 150권 가량 된다. “우리집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왜 있지도 않은 나라의 괴물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대현동 산1번지 아이들>을 쓴 이래 다양한 장애를 소재로 소설을 많이 쓰게 됐고 써서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동화를 쓴 것은,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숱하게 넘어져본 경험 때문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최종 면접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우리 학교는 장애인 시설이 없어서 교수로 채용하기 어렵다” “우리 학교는 ‘건강한 교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눈물을 삼킨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첫권을 냈을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어요. 그러나 원하던 직업을 얻을 수 없어 좌절하면서 더 유연해지고 성장했어요. 아동문학 작가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설 수도 있었고요.”
<아주 특별한 우리 형> 1, 2권을 비교해 보면 장애에 대한 관점에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1권에서 장애는 “십자가”로 묘사된다. 종식을 돌봐준 수녀 출신의 친척 할머니는 괴로워하는 종식을 이런 말로 위로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십자가가 있단다. (…) 종식이의 장애는 종식이의 십자가야. 누구도 대신 질 수 없는 거란다. 이왕 지는 십자가 기쁜 마음으로 지겠니, 슬픈 마음으로 지겠니?” 그러나 2권은 이런 ‘숙명론’과 사뭇 색깔이 다르다. 장애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것이며, 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엄마는 종민이에게 “우리나라 장애인이 인구의 10%인 오백만명”이라며 “장애는 확률의 문제”라고 말한다. “형은 인생이라고 하는 피구시합에서 공을 먼저 맞은 것뿐이야.” 고 작가는 하늘을 쳐다보던 종민이에게 “아, 저 예쁜 구름이 비장애인이라면 갈가리 찢긴 게 장애인 구름인 걸까?”라고 질문을 던지게 하곤, 자문자답한다. “그러나 흩어졌던 구름은 다시 뭉쳤고 뭉쳤던 구름은 다시 흩어졌습니다. 마치 사람의 삶이 계속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몸놀림은 자유롭지 않지만 컴퓨터를 이용하여 꿈을 펼치는 설정은 이번에도 나온다. 1권에서 장애인들이 키보드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자유키 프로그램을 발명했던 종식이는 2권에선 ‘종쳐라 TV’의 유튜버로 변신해 장애인에게 여전히 폭력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고 작가는 종쳐라 TV의 성공을 장담했다.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동권, 교육권 등 장애인들이 마주한 각종 인권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종쳐라 TV의 콘텐츠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넘쳐날 겁니다. 구독자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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