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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드레퓌스 탄식할 때 몽마르트르의 종은 울렸네

등록 2020-01-31 06:00수정 2020-01-31 09:29

미국 역사학자가 ‘점묘화’로 그려낸 19세기 말~1920년대 파리
예술 도시에 몰려든 예술가·지식인이 빚은 낭만과 각종 스캔들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1871-1900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1900-1918
파리는 언제나 축제 1918-1929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현암사·각 권 2만3000~2만6000원

1895년 프랑스 파리. 독일에 기밀을 넘겨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유대인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군적박탈식’이 열렸다. 군중의 야유 속에 드레퓌스의 계급장이 뜯겨 나갔고 그의 검은 무참히 분질러졌다. 그로부터 3년 뒤 에밀 졸라가 사실을 은폐하는 군부의 추악함에 분노하며 ‘나는 고발한다’를 쓴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졸라와 직간접적인 친분이 있던 파리의 다른 예술가와 지식인, 정치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1920년대 프랑스 파리는 문화와 예술, 낭만과 환락이 꽃핀 ‘광란의 시대’를 구가했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1920년대 프랑스 파리는 문화와 예술, 낭만과 환락이 꽃핀 ‘광란의 시대’를 구가했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미국의 역사학자 메리 매콜리프는 당대 파리를 살아 움직이게 한 중요 인물들의 일상을 촘촘히 엮어낸다. 졸라는 드레퓌스의 유죄 판결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그와 매우 가까웠던 알퐁스 도데를 아버지로 둔 왕정파 작가 레옹은 반유대주의 편에 선다. 반면 로댕과 모네는 지인의 칠순 잔치와 새로운 프로젝트에 골몰했으며, 모리스 라벨은 새로운 화성과 리듬의 세계에 눈뜬다. 폴란드에서 온 총명한 여성 과학자 마리 스크워도프스카는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고, 72살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아내가 죽자 오래된 연인과 결혼하나 석달이 안 돼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유산 분쟁이 빚어진다. 교권파와 반교권파의 대립의 상징이었던 몽마르트르의 대성당 ‘사크레쾨르’엔 19톤의 거대한 종이 걸렸고, ‘쇼핑의 전당’ 라파예트 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졸라와 함께 드레퓌스를 지지하는 작가 에드몽 드 공쿠르는 암울함에 몸부림친다. “파리가 내게 이처럼 미친 자들이 사는 나라의 수도로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매콜리프의 ‘파리 3부작’은 파리코뮌 직후인 1871년부터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 문화·경제·정치·기술적 면모에서 눈부신 변화를 일군 파리를 마치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듯 세밀하게 기술한다. 로댕이 새로운 탈것인 자전거를 비싼 값에 사들여 타다가 팔이 부러지는 모습, 가난한 스위스인 세라즈 리츠가 리츠 호텔로 부를 일구는 과정, 시대를 풍미한 여걸 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젊은 경쟁자인 이탈리아의 엘레오노라 두세와 뜨거운 연기 대결을 펼치는 장면, 1910년 센강 범람으로 압축공기 펌프 공장이 침수돼 파리 전역의 시계가 멈춘 사건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반짝이는 설탕가루처럼 곳곳에 박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총 1500여쪽에 이르는 이 대작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뒤얽힌 인물과 사건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며 ‘시대의 점묘화’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마치 매일의 신문이 모여 역사의 큰 줄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19세기말~20세기 초 파리를 움직인 여성들. 왼쪽부터 인상파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소, 무릎을 절단하고서도 무대에 올랐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 ‘나의 학문적 업적과 사생활은 관련이 없다”고 말한 노벨상 수상 과학자 마리 퀴리. 위키커먼스 제공
19세기말~20세기 초 파리를 움직인 여성들. 왼쪽부터 인상파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베르트 모리소, 무릎을 절단하고서도 무대에 올랐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 ‘나의 학문적 업적과 사생활은 관련이 없다”고 말한 노벨상 수상 과학자 마리 퀴리. 위키커먼스 제공

드레퓌스 사건이 왜 그토록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지는 파리라는 무대에서 활동한 주요 배역을 보면 명확해진다. 마르셀 프루스트, 사라 베르나르, 모네는 졸라를 지지했고, 드가와 르누아르는 반대 진영에 서며 파리 문화계는 갈가리 찢긴다. 결국 드레퓌스의 무고함과 진범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듯 보이나 배타와 혐오의 여진은 계속된다. 남편이 작고한 몇년 뒤 마리 퀴리가 동료 과학자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자 프랑스 언론들은 “외국 여자가 프랑스 가정을 탄압하고 있다”며 난도질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파리는 지글거리는 재즈 리듬에 몸을 맡기고 낭만과 영광을 발하며 ‘광란의 시기’를 관통한다. 전세계적 불황에 ‘파리의 축제’는 후다닥 막을 내리지만, 지금도 파리는 100년 전 문화·예술의 뿌리에 기대어 숨쉬고 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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