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기독교 신앙인으로 거듭난 톨스토이의 통렬한 기독교 비판

등록 2020-05-01 06:00수정 2020-05-02 11:16

민중 수탈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교리·체제에 맞서 ‘사랑의 신’ 설파
톨스토이의 비폭력 평화주의 종교사상, 기독교 넘어 간디로 이어져

교리신학 연구

레프 톨스토이 지음, 허선화 옮김/뿌쉬낀하우스·1만9800원

19세기 러시아의 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신앙의 거인이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삶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50살이 될 때까지 톨스토이는 세속의 욕망에 찌든 방탕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실존을 벼랑으로 몰아붙인 ‘중년의 위기’가 닥쳤다. 톨스토이는 <참회록>을 쓰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톨스토이가 ‘탕자의 삶’을 접고 ‘성자의 삶’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튼튼한 지주가 된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교리신학 연구>는 톨스토이가 이 삶의 전환기에 쓴 러시아 정교의 ‘교리신학’ 비판서다. 톨스토이의 신앙관을 깊이 알게 해주는 이 책이 우리말로 처음 완역됐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그는 ‘중년의 위기’를 기독교 신앙으로 넘겼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그는 ‘중년의 위기’를 기독교 신앙으로 넘겼다. <한겨레> 자료사진

톨스토이가 교리신학 비판의 텍스트로 삼은 책은 당대 러시아의 신학자 마카리 불가코프의 <정교 교리신학>이다. 불가코프는 이 책에서 초기 교부 신학 이후 정착된 동방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집대성했다. 톨스토이는 이 교리서를 꼼꼼히 따라가며 그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책의 서두에 나오는 고백을 보면, 톨스토이가 처음부터 정교 교리를 비판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정교회 신앙의 가르침을 연구하게 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정교회와의 일치 속에서 나는 절망으로부터 구원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해준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해보려고 교리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가, 그 내용이 자신의 믿음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비판으로 돌아섰다는 말이다.

톨스토이의 비판이 작열하는 곳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기초로 받들어지는 ‘삼위일체론’이다. 삼위일체론이란 ‘신은 한 분이지만 그 위격(persona)은 세 분이다’라는 것, 다시 말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세 위격이 하나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삼위일체론이 도무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 위격으로 된 신, 아버지도 신이고 아들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지만 세 신이 아니라 한 신이라는 이 교리는 우리의 모든 이해력을 완전히 넘어선다.” 그러면서 톨스토이는 농부들이나 아낙네들에게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말한다. “열 명 중 한 명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것이 무지 때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모든 사람이 대답할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복잡하지도 길지도 않은데 왜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가. “의미를 가지지 않은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비판은 계속된다. 먼저 삼위일체에서 ‘위격’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교리신학 전체를 들여다봐도 알 수 없다. 더구나 그 세 위격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납득할 만한 근거를 내세워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며 ‘신비 중의 신비’라고 주장할 뿐이다. 톨스토이는 삼위일체가 성경에 출처를 둔 것이 아니라, 신학자들이 나중에 정립한 것임을 지적한다.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해 처음으로 관철시킨 교리가 삼위일체다. 당시 아타나시우스의 맞수 아리우스는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예수는 신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것이다.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파에게 패배했고 이단으로 떨어졌다.

톨스토이가 아리우스파의 주장에 가깝다는 사실은 예수의 신성을 옹호하는 교리신학을 비판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톨스토이는 성서의 어느 구절에서도 예수 자신이 신과 동등한 자라고 말한 바가 없음을 강조한다. 물론 예수는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는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불렀다. 톨스토이는 이 사실이 뜻하는 바를 이렇게 해석한다.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서 자신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신의 아들’ 곧 ‘신의 사랑 속에 있는 자’로 자신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신의 아들’이란 삼위일체론이 주장하는 대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돼 태어난 성육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의 사랑을 받는 자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만이 신의 아들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모두 다 신의 자녀이며, 예수 자신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복음서의 말씀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는 예수를 신성화함으로써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을 왜곡했고 예수를 잘못 이해하도록 이끌었다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톨스토이의 이런 비판은 교회와 성직계급에 대한 통렬한 거부로 귀결한다. 교회가 인간의 건전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교리를 고집하는 것은 이런 교리를 통해 민중을 현혹하고 갈취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주교와 대주교라고 불리며 비단옷과 비로드 옷을 입고 다이아몬드 성모상을 목에 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슨 성사를 행한다는 구실 아래 민중을 속이고 수탈하는 데 골몰하는 사람들 (…) 내가 어떻게 이 교회를 믿을 수 있겠는가?” 톨스토이의 이런 기독교 비판은 러시아 정교회와 화해할 수 없는 불화로 이어졌고, 정교회는 톨스토이 파문으로 답했다.

‘교리신학 비판’을 통해 드러나는 톨스토이의 신은 특정 종교나 교파에만 국한된 신이 아니라 불교도든 이슬람교도든 가리지 않고 인간을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신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믿는 이 ‘사랑의 기독교 신앙’을 따라, 러시아 민중을 억압하는 당대 체제를 비판하고 무소유의 실천으로 나아갔다. 특히 톨스토이의 비폭력 평화 정신은 인도의 간디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톨스토이 사상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의 기독교 사상에도 짙은 영향을 남겼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1.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2.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3.

서울어린이대공원 땅밑에 조선시대 말 목장이 묻혀 있었다

우주 생각하는 과학자도 세속에 붙들리네 [.txt] 4.

우주 생각하는 과학자도 세속에 붙들리네 [.txt]

1월 24일 학술지성 새 책 5.

1월 24일 학술지성 새 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