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불황이나 재난 때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출판계의 정설 같았는데, 이제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돈, 부, 그리고 자기관리에 관한 책들이 적잖이 보입니다. 지난 3월,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물 폭탄 12조원어치를 쏟아냈을 때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동학개미 운동’에 뛰어들었던 개인 투자자들이 이제는 ‘투기하는 개미’로 변신한 것일까요? 어딜 가나 주식이나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 서점가에도 코로나 시대의 투자 이야기, 주식 이야기, 부자 되는 돈 공부와 부자 되는 습관을 담은 자기계발서, 그리고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을 조언하는 경영서가 즐비합니다. 불안의 시대를 견뎌보려는 개인의 불가피한 선택과 준비일 것입니다. 워낙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이번주엔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쓴 <자본과 이데올로기>와 영국 정치경제학자 닉 서르닉의 <플랫폼 자본주의>가 나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해 유명해진 천재 경제학자라고나 할까요. 한쪽에서는 거대한 잉여자본이 쌓여가고, 다른 쪽에서는 착취 당하기 쉬운 잉여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현실에서 두 사람은 공공성과 민주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정치를 재구성해서 경제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피케티가 새책 서문에서 “불평등은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라고 했듯, 문제는 정의라는 얘기죠. 이런 책을 보는 일 또한 불안을 다스리는 ‘돈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게 원인을 찾아냈는데 다짜고짜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처럼 답답한 말도 없지만, 더 속터지는 상황은 입이 닳도록 경고하는데도 해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처방전을 받았으니 이제는 치료약을 꿀꺽 삼켜야 할 때인 것 같은데 말이죠. 생각보다 입에 쓰지 않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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