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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어떤 사람들은 왜 죽어야만 보일까

등록 2020-06-05 06:00수정 2020-06-05 09:41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제7의 인간
존 버거 글·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눈빛(2004)

<뉴욕 타임스>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일어난 시위에 대해서 “흑인과 라틴계 노동자들 상당수가 저임금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실직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일자리를 잃은 뒤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큰 식료품점, 요양원, 도축장 등 직종들로 내몰렸고, 실제로 감염된 경우도 다수 있다” 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 중 도축장 감염은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다.

(이주민)노동자들의 도축장 감염 뉴스를 들을 때마다 한 남자가 생각나곤 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다. 고향에 있을 때 그는 작은 마을의 직영 도축장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한꺼번에 열 마리 이상의 동물을 도축하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고 토론의 주제였다. 도시에서의 그는 대형 도축장에서 일했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생산라인의 속도였다. 기절시킨 소들이 통나무처럼 매달린 뒤 10분쯤 지나면 머리가 절개되고 다리들이 잘리고 가죽이 등으로부터 벗겨져 나가고 전기톱날이 가슴뼈를 벌리고 내장을 꺼내고 40초마다 시신이 하나씩 포개지고 60분이면 간 1톤이 모인다. 이런 일은 훈련 없이 진행된다. 그다음 분배가 이뤄진다. 두뇌를 가지고 노동하는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위한 부위(등뼈에서 엉덩이살에 이르는 제일 좋은 부위), 기술 없는 육체노동자를 위한 부위(머리고기 찌꺼기, 허파, 꼬리뼈).

그는 지하실에서 다른 국적 남자들 열다섯명과 함께 지냈다. 그는 밤에 길거리를 걸어다녔다. ‘고향 사람들은 말들, 당나귀들, 암소들, 염소들, 벌레들, 암탉들, 고양이들, 개들과 함께 깊게 잠들어 있겠지.’ 산책을 할 때마다 그는 눈앞에 동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더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동물들이 근처 쓰레기장에라도 있지만 신비롭게 숨어 있거나 아니면 그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소떼들이 맞아 쓰러지기 전에 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가 씻고 있는 머리는 어제 씻은 그 머리였다. 밤 동안 머리들이 몸통에 다시 달라붙고 발굽도 관절에 다시 달라붙고 옆구리도 다시 들러붙고 가죽들도 다시 씌워진 것이다. 다시 다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매일 아침 가죽이 벗겨진 머리통에서 어제와 똑같은 눈동자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빌딩 사이에서 눈에 안 보이는 소떼들이 매일 밤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한달이 지나 고향에 돌아갈 돈이 모으자 그는 도축장을 떠났다.

이 남자의 이야기를 나는 존 버거의 <제 7의 인간>에서 읽었다. 고향에서 그는 소나 개나 고양이에게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도시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을 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처지는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망상의 희생자는 아니었다. 망상은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작업에 방해가 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다만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점점 강해졌을 뿐이다. 어쨌든 내 눈엔 그가 보였다. 그의 소중한 망상과 불편함 때문에. 나는 그를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내 눈엔 조지 플로이드 생애 최후의 몇 분도 보였다. 그를 짓누르는 무릎은 편안해 보였다. 무릎은 불편함 없이 명령했다. “납작 찌그러져 있어!” “까불면 죽는다!” 어떤 사람들은 왜 꼭 죽어야만 보일까? 그것도 잠깐만. 동물은 수백만마리가 살처분 당해도 절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래도 인간의 처지는 낫다고 말할 수도 있는 문제인가?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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