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8일 오후 2시(현지시각)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그는 모든 사람이 25살이 될 때 기본자산을 제공하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듭 강조했다. 문학동네 제공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불평등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시정될 수 있음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단,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코비드(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공동행동이 이후 삶을 결정할 것이다.”
지난 2013년 불평등 문제를 고발한 <21세기 자본>을 선보이며 세계 경제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사진) 파리경제대 교수가 그의 두번째 주저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8일 오후 2시(현지시각)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탓에 한국어판 발간에 맞춰 방한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온라인으로 한국 기자들을 만난 것이다. 그는 “<자본과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나오게 된 것이 아주 기쁘다”며 “머잖아 한국에 가서 많은 사람과 이 책에 관해 토론하기를 고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피케티 교수는 전작 <21세기 자본>에서 미흡했던 점을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째,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었다. 유럽과 미국 이야기만으로 책을 구성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인도·브라질·아프리카·중국으로 시야를 넓혀 세계적인 지평에서 불평등의 역사를 살폈다. 둘째, 불평등이 이데올로기와 맺고 있는 관계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번엔 특히 두번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면서 새 책은 “경제서라기보다는 불평등의 역사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살핀 역사서”라고 설명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8일 오후 2시(현지시각)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그는 모든 사람이 25살이 될 때 기본자산을 제공하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듭 강조했다. 문학동네 제공
그는 이번 책에서 현재의 불평등체제를 떠받치는 정치체제를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의 연합 체제’로 규정한 바 있다.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던 사민주의 좌파 정당이 고학력 엘리트층의 정당으로 변질하고 우파 정당은 자산이 많은 고소득 계층을 계속 지지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중하층을 대변하는 정당이 사라진 현재의 정치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피케티 교수는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가 담합해 지배체제를 형성했는데, 불평등을 줄이려면 이런 정당들의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처럼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르펜,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같은 극우 진영의 발호로 배타적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에 나라 전체가 휩쓸릴 위험이 커졌다”며 “지금까지 진행돼온 ‘부자들을 위한 세계화’와는 다른 대안적인 국제주의의 방식을 모색해 불평등을 완화할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극우의 발호를 막는 데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8일 오후 2시(현지시각)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그는 모든 사람이 25살이 될 때 기본자산을 제공하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듭 강조했다. 문학동네 제공
그는 한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나는 기본소득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생존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기초생활비를 의미할 뿐이다.” 피케티 교수는 기본소득 실현에 멈추지 말고 교육기회의 실질적 평등으로 나아가야 하며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자본소득 증가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자산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25살이 될 때 기본자산을 제공하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도 거듭 강조했다.
“부자들만 자녀들에게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종잣돈을 줄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의 자녀들이 주거를 마련하거나 창업을 구상할 수 있는 종잣돈을 사회가 함께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자산이 일부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뒤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역사를 살펴보면, 전염병 창궐이 경제 문제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바꿔놓은 경우가 종종 있다”며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코로나19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재앙이나 위기가 정해진 한 가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와 그에 따른 공동행동들이 이후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와 함께 그는 “경제체제나 조세제도 같은 중대한 문제들이 지나치게 적은 수의 전문가들 손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모든 시민이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8일 오후 2시(현지시각)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그는 모든 사람이 25살이 될 때 기본자산을 제공하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듭 강조했다. 문학동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