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당신은 누구인가?”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이 질문이 위기의 순간, 생사를 가른다고 했습니다. 그는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생면부지의 타인들이 멀리서 달려와 고립된 사람들을 구조한 일화를 되새깁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모두 제 살 궁리만 할 것 같아도, 실은 많은 이들이 사랑과 연대의식을 경험한다는 것이죠. 코로나19 사태에 환자의 곁으로 달려간 의료진들의 예를 떠올려보면 이해할 만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벌어지면서 인권단체에 ‘역대급 기부금’이 쏟아졌다니 이 또한 재난 가운데 벌어진 유토피아적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대 재난 속 혁명적 공동체를 다룬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솔닛은 재난 때 이타주의와 상호부조로 나아가는 다수와 이기심으로 뭉쳐 2차 재난을 부르는 소수가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이념을 고수하는 소수의 지배자들이 ‘엘리트 패닉’에 빠진다면,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서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놀라운 결실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재난과 혁명은 연대와 체제 전복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대안의 공동체를 상상하게 한다는 얘기죠.
슬라보이 지제크도 <팬데믹 패닉>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는 “재난 자본주의의 해독제”로 새로운 세계를 요청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운행을 멈추었”다며 그는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하는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최근까지 특이한 것으로 취급”했지만 모두 같은 배에 탔다는 의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지급, 부채상환 중단, 보건의료 부문 국유화와 식량위기 대책 등을 언급합니다.
과연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에 앞으로 무엇이 남을지 궁금합니다. 팬데믹, 이것은 인류에게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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