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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종철 발행인 마지막 글 실은 ‘녹색평론’ 7~8월호 출간

등록 2020-06-30 15:16수정 2020-06-30 15:35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 실려
“이 상황은 적어도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특이한 상황이다. (…) 30년 전 <녹색평론>을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예상하는 불길한 미래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25일 세상을 떠난 김종철 발행인 겸 편집인의 글이 마지막으로 담긴 <녹색평론> 2020년 7~8월호(통권 173호)가 나왔다.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151~180쪽)이라는 제목의 글 앞머리에서 김 편집인은 “이 기록은 지난 3개월간(3~5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칩거생활 중 필자가 생각나는 대로 독백하듯이 적은 단상들”이라며 “원래 발표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어서 두서도 없는 데다가 정제되지 못한 표현도 더러 있다”고 독자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글은 크게 인수공통감염병으로서 코로나 사태를 중심으로 세계사와 질병의 역사, 서구와 동양의 생사관, ‘사회’라는 말로 번역되는 ‘society’에 대한 성찰, K-방역의 함정과 위안부 논란, 팬데믹이라는 비상상황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사회의 밑바닥과 ‘생명사상’의 급진성 등으로 나뉜다.

이를 보면, 김 편집인은 코로나 사태를 지극히 우려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에 담긴 곤혹스러움을 설명하며 “감염력이 강한 바이러스를 피하려고 하다가, 인간에게는 어쩌면 생물학적 안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핵심적 가치가 근원적으로 훼손, 파괴되는 게 아닐까”라고 적었다.

“‘society’가 상호 교류와 공유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곧 결사(結社, association)와 바로 연결되는 말”이라며 코로나 시대 거리두기로 인해 “갖가지 상호부조 형태의 자율적 시민활동들”이 가로막힐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다.

슬라보이 지제크, 재러드 다이아몬드, 제러미 리프킨, 유발 하라리 등을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세계적 석학들”이라며 그들이 내놓는 상투적인 대책과 거침없는 “‘예언자’ 행세”를 꼬집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창궐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닌 것 같다. 경박한 언술, 사이비 예언도 창궐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눈길을 끌고 있는 한국의 코로나 대응 방식 또한 큰 함정이 있다며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전자감시망이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라고 언급했다. 우수한 전문가와 리더들의 헌신과 노력이 많지만, 감염 확진자의 ‘동선’은 온 나라의 전자감시망에 의해 밝혀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생각하면 할수록 경악할 현실”이라며 김 편집인은 “이 점을 제쳐두고, 방역 모범국이라는 외국인(물론 서양인)들의 평가 앞에서 그저 우쭐해야 할까”라고 거듭 경고했다.

이와 함께 그는 <역병과 사회>를 쓴 의료사가 프랭크 스노든의 말을 빌려 “팬데믹은 어느 시대에나 그 사회의 본질적인 성격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거울 노릇을 해왔다”며 “사회계급 간의 격차가 이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더욱이 팬데믹 때 가장 중요한 기초 생필품의 생산과 보급, 기초 서비스 활동에 종사하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군이 사회 속에 병존해있는 현실에서 “현대사회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소위 전문직들은 이 비상상황에서는(그리고 정말 건전한 사회라면) 실제로 아무 의미가 없는 직업들”이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인명재천이라는 생사관’이라는 소제목 아래 그는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하다. (…)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심란한 터에 몸이 이러니, 자연히 기분이 처진다. 소위 ‘코로나 블루’가 내게도 이런 식으로 오는가”라고 적었다. 마흔에 접어들어 갑상샘 종양 진단으로 수술을 받기 전후부터 건강이 좋지 않을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김 편집인은 늙어서 죽을 때가 되면 구덩이를 파고 앉아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는 16세기 프랑스 남부 시골 농민들 이야기도 함께 언급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어디서나 죽음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라며 그는 몽테뉴의 사유를 들어 “죽음은 미리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연에 맡겨둘 문제”라고 말했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있다(人命在天)’는 상식…. 내 생각에, 이보다 더 고매한 철학은 실제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데 이토록 명쾌한 ‘철학’보다 더 좋은 약이 있을까.”

또 김 편집인은 동아시아 사상전통에서 유토피아를 가리키는 ‘대동세상’을 언급하며 “부자와 가난한 자, 남녀노소, 신분의 비천을 가릴 것 없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종, 민족을 가릴 것 없이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같은 밥상에서 평등한 관계로 밥을 먹는다는 것-그것이 천국이고 ‘하느님의 나라’”라며 “밥을 먹는 행위야말로 가장 뜻깊은 공생공락의 모습”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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