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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반지성이 판치는 곳, 민주주의 없다

등록 2020-07-10 05:59수정 2020-07-10 09:31

위기에 빠진 ‘선진국 미국’ 정치 신랄한 고발
근본주의적 종교와 무지한 대중 분석한 역사서

반지성주의 시대: 거짓 문화에 빠진 미국, 건국기에서 트럼프까지
수전 제이코비 지음, 박광호 옮김/오월의봄·2만5000원
지은이 수전 제이코비는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고 본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15일 미국 뉴햄프셔 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하는 장면. AFP 연합뉴스
지은이 수전 제이코비는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고 본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15일 미국 뉴햄프셔 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하는 장면. AFP 연합뉴스

국민이 반지성주의에 빠진다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간단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건국기부터 트럼프 시대까지 200년간 미국의 ‘반지성사’를 검토하며 수많은 사례를 들어 정교하게 설명한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의 지은이 수전 제이코비는 이성, 무신론, 종교의 자유에 관한 글을 발표해온 저널리스트 겸 작가다. 국제무신론자연맹이 제정한 리처드 도킨스 상을 2010년 받은 이력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 그는 반지성주의와 반합리주의에 치 떨며 맹공을 퍼붓는다.

<반지성주의 시대>는 2008년 겨울 판테온 출판사에서 처음 발간한 책을 2018년 개정해 낸 것이다. 초판 출간 당시 지은이는 미국의 고질적인 반지성주의, 반합리주의 경향의 급증을 경고하며 부시 행정부를 반지성주의의 절정이라 분석한 바 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개정판이 나오자 독자들은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무지, 반합리주의, 반지성주의가 미국 정치의 지옥문을 열어젖힐 것이라고 어두운 시대를 앞서 예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지은이는 인류의 지적 자산과 논리를 추잡한 정치 용어로 전락시키고 “문화가 너무 싫다” “책이 너무 싫다”고 자랑스럽게 공언하는 트럼프류의 ‘독사과 생산자’들과, 이 과실을 게걸스럽게 따 먹어치우는 ‘반지성 소비자’를 더욱 매섭게 추궁했다.

지은이는 합리적인 계몽주의의 통찰과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반지성이 대립한 미국의 정치사를 통렬히 비판한다. 선진국 가운데 오직 미국 국민들만이 진화론을 주류 과학이 아니라 ‘논쟁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자유주의적”, “근본주의적”, “승리주의적”, “성서문자주의”라는 격렬한 단어로 거듭 설명하는 데서 보듯, 지은이는 종교가 비합리성과 반지성을 양산한다고 분석한다. 미국 반지성주의를 증폭시킨 가장 큰 원인이 근본주의적 종교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공교육의 실패와 더불어 대중의 낮은 지식수준이라는 문제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미국의 신앙이 마주한 최대의 적이 지성과 고등교육이라는 어이없는 신념, 지구온난화나 유전자감식마저 믿지 않는 과학적 문맹, 비합리성을 조장하면서 과학과 합리성의 언어를 사용해 호도하는 ‘정크사상’ 등을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이같은 흐름이 공동체에 끼치는 위협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를테면 의무 예방접종 반대자들이 “거의 종교적 열정”에 가깝게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 등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전문가를 의심하는 우파가 있다면, 1970년대 건강운동의 후예로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고학력 좌파 부모도 있다. 무지는 좌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1960년대 말 미국 사회 격변의 시대에 출간된 고전 <미국의 반지성주의>(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를 연상하게 하는 책. 냉정하고 싸늘한 분석 속에 역사적 반지성의 사례들이 흥미진진하게 열거되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미국 근본주의적 종교와 정치에 영향을 받은 한국의 모습에 대입해보면 더욱 실감난다. 레나타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불안들>,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존슨 너새니얼 펄트) <섹스 앤 더 처치>(캐시 루디) 등 눈에 띄는 학술·인문서를 다수 번역한 박광호의 정확한 옮김으로 편안하게 읽히는 것도 장점.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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