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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전쟁의 비극엔 ‘친족관계’가 있었다

등록 2020-07-10 06:00수정 2020-07-10 10:01

전쟁과 가족-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창비·2만원

베트남전쟁 연구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한국전쟁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한 새 책을 내놨다. <전쟁과 가족>은 한국전쟁이 20세기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이 된 이유를 ‘가족과 친족의 눈’으로 들여다보며 찾아가는 책이다.

지은이는 한국전쟁은 두 군사집단의 교전이라는 전통적인 전쟁사의 시각으로는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한국전쟁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국전쟁 3년 동안 민간인 사상자가 200만이 넘었는데, 그 수는 전쟁 중에 사망한 모든 교전국 전사자 총수보다 많았다. 이토록 많은 민간인이 죽어나갔는데도, 한국전쟁은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잊힌 전쟁이 되고 말았다. 지은이는 한국전쟁에서 작동한 폭력기제가 휴전 후에도 가족과 친족과 공동체 속에 강력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망각 속에 밀어넣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억압된 것은 돌아오기 마련이어서 남한에서 민주화 진전과 함께 전쟁의 진상은 문학작품·자서전·증언록을 통해 폭넓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박완서·최인훈·현기영을 포함한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끌어들이고 경상북도와 제주도의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통해 한국전쟁이 가족과 친족에게 끼친 영향을 탐사한다. 이런 연구를 통해 한국전쟁을 설명하는 핵심 용어로 ‘관계’가 등장한다. 한국전쟁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은 가족의 일원이 좌익 또는 우익에 연루된 데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관계의 비극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연좌제라는 방식으로 재생산됐다. 전쟁 중에 대량으로 발생한 이산가족이 연좌제의 잔혹한 규율권력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친족이라는 사적 영역은 정치 권력이 직접적으로 개입해 폭력을 행사하는 장이 됐다. 지은이는 근대정치에서 친족이라는 환경은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고 가정해온 기존 사회학·인류학의 관념은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적용되지 않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50년 뒤 제주에서 4·3사건 당시 반란 진압작전에 동원된 경찰과 반공청년단의 추모비 옆에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위령비를 함께 세운 사건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이 시건을 ‘우애와 연대’의 회복을 향한 공동체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이해하면서, 민주화 이후 이런 활동이 퍼져나가는 데서 한국 사회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발견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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