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1일 새 회사에 첫 출근했다. 사회생활 5년 차 때 입사하여 만 8년을 조금 넘게 다닌 탄탄한 중견 회사에서 나와, 선배가 맡은 작은 브랜드에서 새 출발을 했다. 출판사로는 네 번째 회사였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조금 답답했다고 할까? 당시 주변에 이야기하곤 했던 내 이직의 슬로건은 ‘보다 작은 곳에서, 보다 마음껏’이었다.
새 회사에 출근하고 한동안은 기획거리를 찾을 겸 아침시간에 종이신문을 펼쳐 봤다. 아침시간에 종이신문을 넘겨 가며 기획거리를 찾는 건 내가 오랫동안 꿈꿔 오던 모습이기도 했는데, 아마 그해 12월 말 새 회사에서 편집을 맡은 첫 책이 나올 즈음부터는 이 시간이 사라진 것 같다. 어찌 보면 간단한 루틴(같은 행동 규칙)인데 왜 오랫동안 꿈꿔 오기만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아무튼 그해 12월 초 우연히 배우 정우성의 칼럼을 접했다. 로힝야 난민촌에 다녀온 후, 그곳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소개하고 관심을 촉구하는 글이었다. 수년간 여러 곳의 난민촌을 방문해 온 경험 위에서 ‘이곳은 진짜 심각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그 글을 읽고 나니 오랫동안 묵묵히 활동해온 활동가의 절절한 호소문을 읽은 느낌이었다. 칼럼을 다 읽자마자 옆자리의 선배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우리 정우성 책 하나 할까요?”
솔직히 그 글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몇 년째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배우 정우성에 대해서도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잘생긴 배우’ 정도로 인식하고 있던 게 다였다. 그런데 그 글 한 편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이런 글들을 묶어서 세상에 내놓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곧바로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홈페이지에서 친선대사 활동을 담당하는 공보관의 연락처를 찾아 이메일을 보냈다. 유엔난민기구에 먼저 협조를 구해야겠다고 떠올린 것은 일전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기 성격의 책을 진행하면서 이런 책의 경우 해당 단체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 유엔난민기구에서도 친선대사 활동기를 구상 중이었고, 기획은 탄력을 받았다. 그리고 1년 반 후인 2019년 6월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정우성의 난민 이야기’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 출간되었다.
책을 진행하면서 나는 ‘당연히도’ 저자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직접 만나고 점점 더 알아갈수록 그는 내가 처음 접했던 그 칼럼에서의 모습과 똑같았다. 진지했고 겸손했고 굳건했다. 그러면서 내 관심은 자연스럽게 배우 정우성으로도 확장되었고, 이제는 그의 영화 개봉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빠져든 분야가 있다. 바로 ‘난민 문제’다. 그의 활동을 계기로 난민 문제가 담고 있는 복잡다단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확인하게 되었고,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최근 펴낸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도 그런 관심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일반인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난민 캠프의 모습을 소개하자며 가볍게 출발하였지만, 역시나 결국은 ‘변방의 문제가 담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을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책이, 또 하나의 분야가 내게로 왔다.
정회엽 원더박스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