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띵동.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전셋집을 팔겠다고 해 울며 겨자먹기로 시세보다 비싸게 집을 사고 난 뒤, 여러채의 집을 가진 매도인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한 것입니다. “잔금 잘 받았습니다. 부자되세요~.” 덕담이긴 했지만 매수인은 한편 씁쓸했답니다. 요즘은 ‘좋은 집주인이 나쁜 집주인’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집주인이 전세나 월세를 올려 쫓아내지 않으면 눌러 앉게 되니 자산 형성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죠.
석달 전 나온 <내 집에 갇힌 사회>(김명수 지음)를 다시 읽어 봅니다. 집을 사고파는 한국인들의 복잡한 전략과 실천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산다고 합니다. 집을 사고팔 땐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 위협을 남에게 이전시키고 남의 부를 자기 쪽으로 가져오는 고도의 전략을 쓰기도 한다는 거죠. ‘위기가 기회’라며 불황이 닥칠 때마다 주택시장이 요동을 치는 까닭입니다. 집을 두고 벌이는 이런 기성세대의 생존 전략은 세대간 갈등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사전의 정의를 보면,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와 더위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뜻풀이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군요. ‘집’은 ‘부동산’을 가리킬 때 쓰는 명사라고 말이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의 골칫거리’, ‘서민의 분노’, ‘중산층의 지위’를 나타내는 명사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영끌 대출’,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인 ‘초품아’, 햄버거 가게가 가까운 ‘맥세권’, 커피숍이 가까운 ‘스세권’ 같은 말까지는 등재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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