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지난해 독립출판물로만 5000부 넘게 판매되었고, 이후 정식 출간되어 1만부가 더 팔려나간 책 <경찰관속으로>. 지은이 원도 작가가 최근 <아무튼, 언니>로 돌아왔습니다. 전작에서 경찰관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었던 그가 이번엔 스물세 살 때 ‘처음 만난 세계’에 관한 경험을 들려줍니다. 희미하게, 눈만 끔뻑이며 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중앙경찰학교에서 합숙 훈련을 하면서 숱한 ‘언니들’을 만난 뒤 그는 강렬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아기 엄마, 소녀 가장, 단편영화 감독, 국가대표 운동선수 등 “‘개인’이던 여성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가 되자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한 사람의 세계는 매일 새로이 바뀝니다. 인도 출신의 미국인 소하일라 압둘알리는 열일곱 살이던 1980년 뭄바이에서 집단 강간을 당합니다. 1984년 이후 지금까지 성폭력 근절과 여성의 건강, 가난, 환경에 대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그는 “아무리 정성껏 치유해도 죽지 않는 한 강간을 당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합니다. 가해자들에게 쉬지 않고 말을 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은 계속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끝없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 헤맸던 미국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이론가이자 시인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말합니다. “의식이 깨어나는 시대에 산다는 건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동시에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분들께 위로를 보냅니다. 지금은 의식이 깨어나는 시대, 건투를 빕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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