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이주혜 옮김/바다출판사·1만7800원
“내가 몹시 싫어하는 침묵은 죽은 침묵이다. (…) 언어가 있어야 할 곳에 언어가 금지되는 침묵이다.”
미국의 시인이며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에이드리언 리치(1929~2012). 그의 산문을 엮은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살도록 강요된 사회 제도와 여성으로서 말하기의 정치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리치는 평생 배움과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고, 깨닫는 대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앎과 삶이 다르지 않았다.
그는 1951년 하버드대 래드클리프대학 졸업과 동시에 첫 시집 <세상 바꾸기>를 냈고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가부장적이고 독재적인 유대인 아버지와 미국 남부 백인 상류층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원가족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고, 서른이 되기 전에 세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가운데 목구멍에 차오르는 갑갑함을 느끼면서 그는 급격히 “급진적으로 변화”했다. 1950년대, “학계의 주부”로 고립된 채 홀로 <제2의 성>을 읽던 그는 보부아르의 이론에 힘입어 숨 쉴 틈을 찾았다. 1960년대, 변화의 시대를 맞아 뉴욕으로 이사한 뒤엔 지식생산과 예술활동을 본격화했고, 동시에 결혼 생활도 끝을 보였다. 리치가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은 차를 몰고 버몬트 시골로 가 권총 자살한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은 리치는 몇년 뒤 생존자로서 선언했다. “난 지금 살고 있어요// (…) // 짧고 강렬한 움직임을 유지하면서 말예요”. 이 “강렬한 움직임”은 여자답고 강력한 레즈비언 존재로 변화하기에 이른다. 유대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1970년대 초중반, 리치는 “열정적이며 관능적이기까지 한 여성들끼리의 관계”를 열렬히 탐구하고 실천한다. 결혼하지 않은 채 한해 최대 366편, 통틀어 2000편에 이르는 시를 썼던 에밀리 디킨슨을 분석하고, <제인 에어>를 파고 들었다. 이론가로서 리치는 1980년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라는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하며 정상적이라고 간주되는 이성애야말로 가부장제의 토대이며 정치적 제도라고 밝혔다. 남성은 “육체적, 경제적, 감정적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에게 이성애를 강제”하며, 여성은 강제적 이성애를 강요당해왔기에 “레즈비언 존재”는 강력한 저항 방식이 된다. 그는 이성애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거대한 침묵을 깨뜨리고,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새로이 명쾌함을 구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리치는 자신의 언어를 찾으려고 쉼없이 노력했으며 이라크 전쟁에 반기를 들고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자 시민으로서” 1997년 정부가 주는 국가예술훈장을 거부했다. 그는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모두를 말하는 예술이야말로 민주주의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같은 해 ‘가능성의 예술’에서 밝힌 그의 생각은 오늘날 여성들에게도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나는 큰 소리로 노래하고 싶다…. 언어 자체를 정신을 위한 강철로 바꿔내는 언어를 찾고 싶다. 번쩍거리는 저 은색 곤충, 저 제트기에 맞서 사용할 언어를. 나는 노래하고 싶다. 나는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언어를,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언어를, 이 우주적인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안에 어떤 힘이 있는지, 내게 증언을 요청하고 나 역시 증언을 요청할 수 있는 언어를 원한다. (…) 여기 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씨름하는 것, 위험한 것, 솔직한 것이.”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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