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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순교, 혁명, 환대, 시인의 나라 ‘이란의 진짜 얼굴’을 찾아서

등록 2020-07-17 06:02수정 2020-07-17 16:19

외세 극도로 경계하지만 인연 중시…남녀노소 시 읊는 ‘문화 강국’
국내 최고의 이란 연구자 유달승 교수가 들려주는 ‘이란 속사정’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상사원도 알고 싶은 이란의 속사정

유달승 지음/한겨레출판·1만4000원

이란 테헤란에 교환교수로 가게 된 지은이에게 사람들은 계속 물었다. “거기 가도 되겠어?” “전쟁 나지 않을까” “그런 위험한 곳에는 왜 가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반복되는 질문에 지은이는 농담 삼아 답한다. “내가 전쟁을 막으러 가려고.”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이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쟁, 테러, 핵 개발, 인권침해, 신정체제, 미국에 맞서는 이슬람극단주의 나라 같은 것이다. 미국의 시선이 만들어낸 ‘위험한 이란’의 틀에 우리도 갇혀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까지 한국에 이란은 선망의 나라였다. 이란은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었고, 전세계 석유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인 자원부국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 한국인들에게 ‘친근했다’.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가, 이란 테헤란에 서울로가 이때 만들어졌다.

지난 2월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의 수공예품 가게 앞을 여성들이 지나가고 있다. 테헤란/박민희 기자
지난 2월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의 수공예품 가게 앞을 여성들이 지나가고 있다. 테헤란/박민희 기자
극과 극 이미지에 갇혀 있는 이란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국내 최고의 이란 연구자인 유달승 교수가 이란과 이란인들의 이야기를 깊고도 친절하게 들려주는 책을 펴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본 이슬람혁명에 대해 알고 싶어 이란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한국인 최초로 이란으로 유학을 떠나 이슬람혁명 이후 최초의 외국인 박사가 되어 30년 넘게 이란을 연구해 왔지만, 그의 시선은 ‘내가 이란을 다 안다’는 오만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여전히 ‘나는 정말 이란을 제대로 아는 걸까’, 겸손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란 구석구석을 관찰한다. ‘상사원도 알고 싶은 이란의 속사정’이란 부제처럼, 한국인들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란인들의 사유와 가치관, 생활 방식, 음식, 사업 방식부터 역사와 문화, 정치 제도, 국제관계까지 이란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유학시절부터 시작해, 지난해부터 방문교수로 테헤란에서 1년을 보내며 만난 이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에서 포착한 내용들도 생생하다.

테헤란대학에 처음 유학 갔을 때 그는 시간 약속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이란인들 때문에 당황했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 자원으로 여기는 서구나 현대 한국인들과 달리, 이란인들은 시간보다는 공간과 인간 자체에 더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이란에는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와는 정반대의 개념인 느림의 철학, 야바쉬(Yavash)가 있다. 천천히, 그러나 신중히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지난 2월 테헤란 북부 타즈리쉬 바자르에 있는 미술교실에서 여성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테헤란/박민희 기자
지난 2월 테헤란 북부 타즈리쉬 바자르에 있는 미술교실에서 여성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테헤란/박민희 기자
이란인들은 외세를 극도로 경계하지만, 사람과의 인연은 극도로 증시하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란 역사는 끊임없는 이방인의 침략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 가득하다. 알렉산더 대왕부터 아랍인, 투르크인, 몽골인, 러시아인, 영국인 그리고 미국인까지 이방인들이 끊임없이 이 땅을 침략하고 지배했고, 이란인들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란의 근현대사에선 ‘한번의 운동과 두번의 혁명’이 일어났다. 1890년대 국왕이 영국인 기업가에게 이란 담배를 50년간 전매할 권리를 넘긴 데 항의해, 상인과 성직자를 중심으로 대중들이 절대왕권과 외세에 저항한 담배 불매 운동을 일으켜 왕을 굴복시켰다. 이는 1906년 아시아 최초의 입헌혁명과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란인들은 7세기 아랍에 정복돼 이슬람화됐지만, 아랍인들과는 달리 이슬람 소수파인 시아파 신앙을 지키면서 오랜 탄압을 견뎠다. 시아파의 역사는 패배와 순교의 역사이고, 이는 이란인들의 강한 저항 정신의 중요한 토양이다. 또한, 이란인들은 ‘문화의 힘’으로 정복자들에 흡수되지 않고 문화적으로 정복자들을 압도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지금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시를 읊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서사시 <샤나메>(왕의 책)를 쓴 페르도우시, 신비주의 시인 루미, 사디, 서정시인 하페즈, 오마르 하이얌까지 1천년 전 시인들이 쓴 시는 지금도 이란인들의 정신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의 표지에 쓰인 페르시아어는 이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사디의 시 <아담의 후예>다. “인류는 한몸/ 한뿌리에서 나온 영혼/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지.” 미국 뉴욕 유엔본부 입구에 새겨져 있는 글귀다.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의 카펫 가게. 카펫은 이란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테헤란/박민희 기자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의 카펫 가게. 카펫은 이란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테헤란/박민희 기자
강압적인 외세는 배척하지만, 이란 사람들은 “손님은 신의 친구”라며 이방인 친구에게도 따뜻한 호의와 친절을 베푼다. “한번 이란과 인연을 맺게 되면 그 순간 세상의 시간이 멈추고 영원한 관계가 구축된다.” 올해 2월 이란에 코로나19가 확산돼 약국과 상점에서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모두 동이 났지만, 지은이가 머무르던 숙소를 관리하는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숙소 문고리에 마스크, 비닐장갑, 작은 알코올 병이 담긴 봉투를 걸어놓고, 또 다른 친구들은 매일 지은이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고 이삼일에 한번씩 과일과 빵을 가져다 주었다. 감사를 표하면 그들은 “그건 내 의무입니다”라고 할 뿐이다.

이란은 이슬람 성직자가 통치하는 신정체제이지만, 다양한 정치 이념이 공존하고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다. 최고지도자의 신성한 권력을 주장하는 정통 우파(보수파)와 신원리주의자(강경파)가 있는 반면에 최고지도자가 헌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국민의 뜻을 충실히 대변해야 한다고 보는 좌파(개혁파)와 현대 우파(중도파)도 있다. 미국과의 대립 속에 보수파의 권력이 강해졌지만, 개혁파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란인들은 한국 제품, 드라마, 한국인에게 매우 우호적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제재를 강화하면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이란을 떠났다. 이 책에는 한국인들이 미국의 눈이 아닌 우리의 눈으로 이란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미국이 이란을 적으로 여길지라도 우리는 이란의 적이 아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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