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문학으로서의 <사기> 읽기
최경열 지음/북드라망·2만3000
사마천의 불후의 명저 <사기>는 기전체라는 서술방식을 최초로 정립한 역사서에 속한다. 그런 <사기>를 문학작품으로 읽을 수는 없을까? 한문학자 최경열씨가 쓴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는 <사기>를 사마천의 마음이 투영된 문학작품으로 읽어가는 책이다. 지은이는 ‘항우본기’를 비롯해 ‘유후세가’ ‘백이열전’ ‘화음후열전’ ‘자객열전’ 그리고 ‘오랑캐’ 이야기를 담은 ‘남월열전’과 ‘흉노열전’을 자료로 삼아 이 독특한 시도를 감행한다.
사마천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지은이는 먼저 연암 박지원의 편지글을 인용한다. “그대는 태사공(사마천)의 <사기>를 읽었지만 그 글만 읽었을 뿐, 그 마음은 읽지 못했습니다.” 사마천이 이 책을 저술할 때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사기>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어 지은이는 <사기>를 저술하는 사마천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글, 곧 친구 임소명에게 보낸 편지를 꼼꼼히 읽는다. 이 편지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이릉이라는 장수를 변호하다가 황제(무제)의 미움을 사게 된 경위를 밝히고,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죽음 대신 궁형이라는 치욕을 감수했음을 솔직하고도 격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임소명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일부는 <사기>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태사공 자서’에도 등장한다. 지은이는 이 글들에 나타나는 사마천의 마음을 ‘수치’와 ‘분노’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수치와 분노를 연료로 삼아 <사기>라는 방대한 저작을 완성시켰다는 것인데, 지은이는 사마천이 그런 사적인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공적인 것’, 곧 공공성으로 심화한 데 <사기>의 위대함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사마천이 무제에 대한 강렬한 분노를 사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사기> 안에서 ‘군주의 모범적인 행동이란 무엇인가’를 사색하는 단계로 끌고 간 것이 이런 공공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렇게 보면 <사기>는 일종의 ‘분노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런 감정의 격동이 전편에 흘러 넘친다는 이유로 초기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방하는 책’으로 낙인찍히기까지 했다. 그랬던 것이 문학을 대하는 감성과 시각이 달라지면서 당-송을 거쳐 점차로 명성이 높아졌고 명대에 이르러 위대한 작품으로 올라서게 됐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문학관의 혁신이 <사기>의 ‘와일드하고 불규칙한 리듬과 행문’에서 걸출한 문체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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