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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약자의 철학’ 펼친 두 사상가들의 지긋지긋한 고난과 성취

등록 2020-07-24 05:02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의 1999년작 ‘홉스’…90여년 발자취와 논쟁 수록
‘인간 마르크스’ 고뇌와 역사적 맥락 담은 제이슨 바커 역사소설도 발간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지음, 진석용 옮김/교양인·2만9000원

마르크스의 귀환: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1만9000원

근대 서구 정치사상사의 고전 <리바이어던>을 쓴 토머스 홉스(1588~1679)와 <자본>을 쓴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고난 가득한 생애와 성취를 다룬 책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두권 모두 얇지 않은 두께에 내로라하는 철학 거장들의 삶을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희로애락이 교차하며 흥미롭게 읽히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화가 아브라함 보스가 그린 <리바이어던> 초판(1651) 표지 삽화. 리바이어던의 몸은 수많은 개인으로 이뤄졌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화가 아브라함 보스가 그린 <리바이어던> 초판(1651) 표지 삽화. 리바이어던의 몸은 수많은 개인으로 이뤄졌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은 미국의 홉스 철학 권위자인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가 1999년 쓴 저작이다. 물리학, 기하학, 종교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하던 근대 초기 시대상을 11장으로 나누어 한 사상가의 파란만장한 90여년을 조명한다. 홉스가 태어난 1588년은 “액운이 든 해”가 될 것이라고 일찌감치 점쳐졌으니, “조국이 종말의 날을 맞을 거라는 소문” 한가운데서 그의 어머니는 “공포와 함께” 아들을 잉태했다. 삼 남매 중 둘째로 일곱달 만에 태어난 홉스는 배움도, 덕도 모자란 목사 아버지에게 침례를 받았다. 툭하면 화를 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자취를 감춰 버리고, 조숙한 학생으로 자란 홉스는 14살 때 옥스퍼드에 진학했다.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을 좋아해 어려서부터 지적 독립심과 자부심이 컸다. 훗날 르네 데카르트 등과 치열하게 논쟁한 씨앗이 이때 뿌려진 셈이다. 1608년 문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그는 이후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캐번디시가와 인연을 맺었다. 정치인 윌리엄 캐번디시는 홉스의 제자 겸 상전이자 친구였고 둘의 인연은 20년 동안 이어졌다.

초상화가 존 마이클 라이트(1617~1694)가 그린 토머스 홉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초상화가 존 마이클 라이트(1617~1694)가 그린 토머스 홉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교와 구교 간의 30년 전쟁 속 혼란기에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그는 자신의 정치이론을 다져갔다. 40대 초반의 나이로 기하학을 만나 근대 과학적 사고에 눈뜬 홉스는 1634년 2년간 여행을 떠나 프랑스에서 르네 데카르트를, 이탈리아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을 만났으며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훗날 쓰게 될 저작들의 힌트를 얻었다. 1640년 정치적 변화 속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홉스는 프랑스로 망명해 11년간 돌아오지 못한다.

대표작 <리바이어던>(1651)을 출간한 때 그의 나이는 63살이었다. ‘리바이어던’은 <성경> 욥기 41장에 나오는 바다 괴물을 상징하는데, 홉스는 리바이어던에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연 상태의 비참함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보여주려 했다. 근대 국가의 원리를 처음으로 정립한 이 책은 물리학, 생리학, 심리학, 도덕학, 정치학, 비판 신학을 웅변적으로 담은 홉스 정치철학의 정수다. 절대 주권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공적 구조물’인 시민 국가가 (예수 재림 전까지) 지상의 유일한 구세주이며, 상향식 인민 주권의 양도를 통해 국가가 형성된다고 주장했기에 홉스는 왕당파와 의회파, 국교회와 가톨릭 모두의 미움을 샀다. “히드라, 극악한 리바이어던, 거대한 용, 무시무시한 괴물, 영국의 야수, 형편없는 교리 전파자, 실성한 지혜 유포자… 사기꾼.”(국교회 신자 찰스 로보섬, 1673) 이처럼 홉스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비난받았지만 지은이는 홉스가 “약자의 철학”을 펼쳤다고 강조한다.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에 빠져드는 무법천지를 피하는 방법으로 그는 근대 국가의 정치철학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이미 전쟁의 공포와 쌍생아로 잉태되어 성인으로 자란 뒤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망명길에 올랐던 홉스, 왕당파에게서 살해 협박을 받고 한편으로는 무신론자라는 비난 속에 처형의 두려움에 떨며 살아간 그가 공포에서 벗어나는 정치체제를 꿈꾼 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는 점을 지은이는 밝힌다.

카를 마르크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카를 마르크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마르크스의 귀환>은 영국 런던 출신의 철학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작가이자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영화, 철학, 드라마를 가르치고 있는 제이슨 바커 교수가 경쾌하게 써내려간 카를 마르크스의 일대기 소설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은이는 카를 마르크스의 일생을 “독일판 ‘기생충’”이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 부부가 생존을 위해 벌인 매일의 투쟁, 나름의 전략과 전술, 끝없는 돈 걱정과 여러모로 고통스런 일상생활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속 가족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외국의 평자들로부터 다소 불경스럽다는 묘한 찬사를 받았다는 이 책은, 역시나 거침없으면서 발랄하며 유쾌한 전개가 때론 무람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더욱이 책 앞머리부터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나 정치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마르크스가 얼마나 온건해 보이는지 흥미롭다”며 한국 사회 비평까지 더한 점을 보면, 서구 백인 남성 지식인의 시각이 지나치지 않은가 의심할 뻔하다가도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필치와 섬세한 역사적 재현에 어느새 고개를 수굿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 탄생의 역사, 혁명의 역사를 중심으로 ‘인간 마르크스’의 땀과 눈물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지은이는 뛰어난 지적 상상력과 학식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 스피노자, 루이 알튀세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군데군데 존재감을 과시하며 당대 유럽의 혁명적 문화와 지적 교류를 친근하고 생생하게 보여주어 뜨거운 역사적 현장 속으로 독자를 강하게 밀어 넣는 흡인력도 강하다. 덕분에 20세기 마르크스의 고뇌와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문제가 곧장 연결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미적분학을 동원해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모습이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혁명의 힘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장면들은 특히나 인상적.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은 뒤 아비의 유령을 만나 사투하듯 논쟁을 벌이고 “아버지를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에요! 노동자들을 위해 썼어요, 혁명을 위해서요!” 외치며 유산을 끝끝내 거부하는 모습에서 혁명적 사유를 멈추지 않은 한 사상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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