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더글러스 애덤스·마크 카워다인 지음, 정우열 그림, 강수정 옮김/홍시(2014)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 더글러스 애덤스는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과 함께 멸종위기 동물들을 찾는 기획에 참여했다. 이 두 사람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기 <마지막 기회라니?>를 읽은 나의 느낌은? 솟구치는 질투심에 시달리며 신세한탄을 하느라 바빴다. 두 사람과 동행한 사람이 하필이면 나와 같은 직종인 BBC의 라디오 피디였다. BBC 피디를 살짝 절벽으로 밀고 내가 마이크를 들고 눈부신 활약을 했더라면 나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다른 욕망 없이 천사 같이 살았을 것이다. 더글러스는 실버백(등에 은색 털이 난) 고릴라와 마주쳤는데 실버백은 수풀 속에 누워 귀를 긁적이며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글러스는 개미들이 물어대는 통에 가려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가방에서 분홍색 노트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먹으로 턱을 받치고 일요일 오후처럼 누워 있던 실버백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눈이 종이 위를 휘갈기는 내 손을 쫓았고 조금 있다 손을 뻗어 처음에는 종이를, 이어서 볼펜 윗부분을 만졌는데 그걸 나한테서 빼앗거나 심지어 나를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뭔지 감촉은 어떤지 알고 싶어서였다. 나는 녀석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바보처럼 내 카메라도 꺼내서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생각에 잠긴 듯한 녀석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고, 주먹이 밀어올리는 힘에 주름이 잡힌 입술도 좋았다.” 가장 보고 싶던 동물은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는 새 카카포였다. 카카포에게는 뭔가가 자기를 해칠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적이 공격을 해도 어리둥절한 채 그냥 둥지에 앉아 있다. 대체 이 새가 어떻게 살 수가 있겠는가? 이 문제는 내 근심거리가 되었는데 속 썩을 일은 또 있다. 짝짓기다. 수컷의 짝짓기 울음소리는 웅-웅거리는 저음인데 문제는 암컷 카카포도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어디야 어디?” “여기라니까.” “여기가 어디야?” “아, 글쎄 여기라니까.” “이런, 젠장.” 한 암컷 카카포는 밤에 짝을 찾아 32킬로미터를 걸어갔다가 아침에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암컷이 이렇게 행동하는 기간은 아주 짧은데 암컷은 (나로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포도카르푸스가 열매를 맺을 때만 짝짓기를 하려고 한다. 가슴 아리게도 이 나무는 2년에 한번만 열매를 맺는다. 그 결과 카카포는 3~4년에 한번 알을 달랑 한 개 낳는데 그마저 족제비가 먹어치우기 일쑤다. 신은 어쩌자고 카카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더글러스에 따르면 신은 어떻게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그냥’ 만들어본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인간 중심주의가 아니라 카카포 중심주의자가 되고 싶다. 어떻게든 생존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나도 ‘그냥’ 만들어진 창조물 계보에 속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나 같은 사람도 살게 해달라고 카카포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 우리가 멸종동물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인수공통감염병 시대에는 생태계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릴라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냥’이란 말이다. 이 실용적인 시대에 ‘그냥’이라니, 너무 달콤하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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