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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차이를 가로질러 ‘우리’를 만드는 연대의 정치

등록 2020-08-07 05:00수정 2020-08-07 10:28

주디스 버틀러, 아렌트 정치철학과 대결하며 배제된 자들의 연대 탐색
“자유는 나를 넘어 우리가 될 때 오는 것”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 비판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양효실 옮김/창비·2만3000원

주디스 버틀러는 서른세 살 때 펴낸 <젠더 트러블>(1989)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페미니즘 철학자다. 그 자신 성소수자로서 ‘퀴어 이론’의 새 장을 연 버틀러는 이후 학문 활동을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해 여러 권의 관련 저서를 펴냈다.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2015)는 버틀러의 이런 학문적 변모를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특히 이 책에서 버틀러는 한나 아렌트의 저작을 끌어와 이 선배 여성 철학자의 이론과 집요하게 대결하며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나간다. 아렌트의 계보를 잇는 정치철학자로서 버틀러의 위치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정치적 주체’의 지위에서 배제돼 왔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성·인종·계급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불안정성’(Precarity)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이 버틀러가 주목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주로 2010년에서 2014년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집회와 시위를 자료로 삼아 이 사회적 약자들이 공적 공간에 출현하는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 양상을 살펴 나갈 때 버틀러가 대결의 카운터파트로 삼는 사람이 아렌트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모델로 삼아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공적인 영역은 정치가 실행되는 공간인데, 여기에는 ‘성인 남성 자유민’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이 공간에서 자유민들은 말로써 정치적 주제를 토의하고 결정했다. 반면에 사적인 영역은 정치적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곧 여성·노예·외국인에게 할당된 공간이자 일생상활의 인프라가 제공되는 공간이었다. 아렌트는 이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과 분리돼 있다고 가정했을 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버틀러는 아렌트의 이런 구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남성 자유민들이 공적 영역에 나와 정치 행위를 하려면 먼저 사적 영역의 뒷받침을 받으며 일상의 삶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사적 영역을 배제하는 것은 그 삶의 토대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렇게 배제된 사적 영역의 사람들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버틀러는 성소수자, 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하층 노동자 같은, 오늘날 ‘불안정 상태’에 처한 사람들이 과거의 ‘사적 영역’을 책임지던 사람들과 통한다고 말한다. 버틀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회적 약자들이 집회와 시위의 방식으로 공적 공간에 참여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 사람들이 거리를 집회와 시위의 장소로 만듦으로써 ‘공적인 공간’을 창출하고 그런 공적 공간에서 자신들에게 ‘삶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여기서 버틀러가 되풀이하여 사용하는 용어가 ‘신체’라는 말이다. 집회와 시위는 말의 문제이기 이전에 몸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버틀러가 ‘신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데는 아렌트의 주장에 담긴 약점을 드러내려는 뜻도 있다. 아렌트는 신체적인 것, 다시 말해 생존과 생활을 책임지는 일상의 영역이 공적인 공간에 끼어들어 이 공간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자 ‘이성적’ 동물이고, 정치란 이성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다. 그런 공간에 동물적인 것, 곧 신체를 돌보고 유지하는 문제가 끼어들면 그 이성의 언어가 교란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버틀러는 아렌트의 이런 생각에 반대해, 인간이 이성적 언어를 쓰는 존재이기 이전에 살아 있는 신체로써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버틀러가 신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데는 신체의 활동이 우리의 정신과 사고를 규정하는 근원적 힘이 된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이런 생각을 버틀러는 자신이 <젠더 트러블>에서부터 사용한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어떤 행위를 직접 몸으로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기도 하고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신체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이렇게 집회와 시위에 몸으로 참여해 공동의 행동을 할 때 그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의식을 형성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재구성해준다는 것이 수행성 개념에 담긴 뜻이다.

여기서 버틀러는 논의를 연대의 문제로 확장한다. 배제된 자들이 각자 고립된 상태로 싸워서는 각개격파당할 수밖에 없다. 신체들은 서로 연대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버틀러는 여성이나 흑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체성 정치’가 지닌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체성 정치는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동맹을 결성해 자신들의 권리를 키우는 정치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연대의 정치를 구현할 수 없다. 더구나 그런 정체성 정치는 예기치 않은 반동적 효과를 내기도 한다. 버틀러는 그런 사례로 이스라엘 정부가 텔아비브를 ‘동성애 친화 도시’로 내세우고 선전하는 것을 거론한다. 이스라엘 최대 도시가 동성애자에게 우호적인 곳임을 자랑함으로써 동성애 문제에 개방적인 서구사회의 지지를 얻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참혹한 탄압을 물타기하려는 책략이다. 정체성 정치는 이스라엘의 이런 추악한 캠페인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성 정체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면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 일각의 운동도 연대의 정치를 파괴한다. 버틀러는 성소수자를 부르는 별칭인 ‘퀴어’라는 용어가 “정체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를 뜻한다”고 강조한다.

연대의 정치는 자유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한마디로 말해 자유는 연대의 산물이다. “자유란 나에게서 혹은 너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서 오는 것이자 우리가 자유를 함께 행사하는 그 순간에 우리가 만드는 유대로부터 오는 것이다.” 차이를 가로질러 우리가 될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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