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으로 돌아가기
조애나 메이시·몰리 영 브라운 지음, 이은주 옮김, 유정길 감수/모과나무·2만2000원
“어스름이 짙어지는 이 밤/ 어떻게 노래를 시작해야 할까? / 황홀한 밤 마음은 요동치고/ 덜컥 어둠이 닥쳐오네/ 황홀한 밤 마음은 요동치고” (파파고 선주민 주술치료사의 기도문)
“우리는 압니다. 이 땅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이 땅의 소유물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가족이 한 핏줄로 묶이듯 만물은 하나로 이어져있습니다. 대지에 무슨 일이 닥치든 그것은 대지의 자식에게 닥치는 법이오.” (시애틀 추장의 연설)
“우리는 고대 노아의 드라마를 반대로 재연합니다. 마치 영화가 거꾸로 재생되듯 동물들이 배를 타고 떠나갑니다./ 족제비 고릴라 호랑이 늑대// 너희의 발자국이 날로 희미해지는구나. 기다려라. 기다려라. 너무 힘겨운 시기이니. 우리가 망쳐버린 세상에 우리만 두고 떠나지 말아 다오.” (조애나 메이시의 동물 우화시, 사라져가는 벗에게)
지구상 모든 존재가 연결돼 있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었다. 직설이었다.
재연결 작업의 나선형 순환을 나타내는 그림. ⓒ Dori Midnight
파이팅 넘치는 할머니 생태철학자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고, 숨 한번 크게 쉬는 일조차 주위 눈치가 보인다. 오랜 친구를 만나도 얼싸안기는커녕 손 닿기조차 꺼리는 코로나 시대, 산호초가 사라지고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나오는 기후변화의 시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자로 내몰리고 가진 자들의 축적과 소비는 극에 달하는 빈익빈부익부의 시대, 종이와 잉크가 사라진 이 화려한 디지털 시대의 어려움을 일찌감치 예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달라이라마와 매튜 폭스 등 세계 영성가들의 오랜 지지를 받아온 생태철학자이자 활동가 조애나 메이시(91). 그는 틱낫한과 티베트 승려 두구 최겔 린포체에게서 불교사상을 배워 불교생태운동을 벌여온 수행자이기도 하다. 동료 몰리 영 브라운과 함께 쓴 <생명으로 돌아가기>(영어판 1998년 초판, 2014년 개정판)에서 그는 어두운 시대를 예견하면서도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직면하도록 이끌고 다독인다. 매튜 폭스는 이 책을 “신비주의자와 선지자를 위한 설명서” “에큐머니즘을 바탕으로 종교와 지혜를 넘나드는 실습을 활용한다”고 소개했는데, 과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가라’는 제안은 너무 착하고 막연한 듯하지만 ‘대전환’을 위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지침이기도 하다.
메이시는 기후변화, 핵오염, 오일샌드 추출, 해저 굴착, 식량 공급의 유전공학 문제 등 산업성장사회가 낳은 문제에 맞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하천 복원, 빈터 공원 조성, 석유생산과 송유관 건설 막기, 태양열과 정수 기술 들여오기까지 미미한 듯 보이는 이런 선택을 하는 순간이 실은 “혁명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문제는 남은 시간. “농업혁명까지 수세기가 걸리고 산업혁명까지 수세대를 거쳤지만, 이 생태혁명은 불과 몇년 사이에 일어나야 합니다.”
조애나 메이시는 ‘생명보호를 위한 지연전술’로 집회, 행진, 기타 반대시위와 생태를 파괴하는 군사시설물 건설 저지운동을 제안한다. 지난 18일 한국인들에게 보낸 동영상 메시지에서 제주섬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1월7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 공사장 출입문 앞에서 시위를 하던 천주교 사제와 주민들을 경찰이 해산시키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그는 산업화된 사회에 관한 담론을 세 가지로 나눈다. 통상적인 삶, 대붕괴, 그리고 대전환이다. ‘통상적인 삶’은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거의 없다고 규정하며 경제 불황, 심각한 기상 악화도 일시적 어려움일 뿐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 여기는 태도다. ‘대붕괴’는 환경과학자, 독립언론인, 활동가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로, ‘재앙’에 주목한다. 이들은 생물·생태·경제·사회 시스템 교란과 붕괴를 증거로 채택한다. 마지막으로 ‘대전환’은 대붕괴를 막으려는 이들의 이야기다. 지구 생명을 위한 행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대전환을 목표에 두고 벌이는 ‘생명보호를 위한 지연전술’로 메이시는 몇가지 (때론 과격한) 방안을 제시한다. △동물과 인간의 건강·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 기록 △기업과 정부의 관행 폭로 △집회, 행진, 기타 반대시위와 투자 철회 운동 △생태를 파괴하는 군사시설물 건설을 저지할 것 등이다. 이 안에는 단식투쟁과 함께 저항을 하다가 부당하게 체포될 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한 보호소 마련, 산업성장사회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쉼터, 음식, 진료소, 법률자문 서비스 제공 같은 일도 포함돼 있다. 지연전술의 대상이 되는 정책들은 화석연료 추출, 핵발전, 수압파쇄법, 유전자변형, 비밀 국제무역협정, 물 민영화, 동물학대, 드론 전투, 인신매매와 노예제, 약탈적 금융주의(신용카드와 학자금대출 부채, 서브프라임 모기지, 헤지펀드, 파생상품) 등을 포함한다. 그는 “항의와 시민 불복종은 어느 때보다 위험해졌다”며 “행동에 나선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을 때는 한발 물러나 숨을 돌릴 여유도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맨 앞에 날던 거위가 지쳐서 무리 틈에 자리를 잡으면 다른 거위가 앞장서는 것처럼, 이제 또 다른 방식으로 대전환 작업을 이어나가면 됩니다.” 괜스레 위로가 되는 말이다.
조애나 메이시는 “개인만의 구원은 없다”며 “세상이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이유진
개인만의 구원이란 없다
메이시는 되풀이해 말한다. “상황을 직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우리의 지성을 믿어야 합니다.” 그는 지금 시대에 세 가지 강이 함께 흐르고 있다고 본다. 세상에 대한 고뇌, 양자물리학과 같은 과학계의 위대한 업적, 선조들의 가르침이다. 이 셋이 합류하는 곳에서 우리가 지구를 토대로 살아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인식과 가치관의 변화에 이르는 길로 그는 각종 종교의 영성, 선주민 가르침의 문서화, 정치비평과 여성운동을 결합한 에코페미니즘, 산업성장사회로 인해 불균형 피해를 입은 곳에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문제가 두드러짐을 알리는 환경정의운동 등을 제안한다. “먼저 내 안에서 평화를 찾은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말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관념이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대신 “개인만의 구원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이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밝히는 서늘한 진실이고 기본적인 입장이다.
지은이들은 40년 넘게 워크숍을 진행해왔는데, 이를 ‘재연결 작업’이라 일컫는다. 나와 세상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전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과 히브리 선지자의 말, 붓다의 가르침, 아메리카 선주민 같은 인류의 오랜 스승들의 말을 통합한 방법으로, 가장 바탕이 되는 해석은 우리가 세상과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연기론적 세계관’이다. 메이시는 아름답거나, 끔찍하거나,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는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고 모든 생명을 위해 행동하기로 마음먹는 ‘보리심’을 내도록 이끈다. (여기까지 이르면, 이 책이 제안하는 것이 수행자의 길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재연결 작업은 나선형 순환 구조를 갖는다. 고마움으로 시작하기→ 세상에 대한 고통 존중하기→ 새로운 눈으로 보기→ 앞으로 나아가기다. 각 단계마다 배울 점이 있는데, 혹시나 실패하더라도 고마움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 “파괴와 비극을 마주하며 특히 겁이 나거나 지칠 때 고마움을 떠올리면 마음의 중심을 잡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은 말 그대로 연민이며 영적 전통의 핵심이 되는 덕목임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밖에도 600쪽이 가까운 책의 절반 정도에 자세한 워크숍 방법을 담았다.
조애나 메이시의 메시지는 오랜 변혁운동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50년 넘게 활동가로 일하며 주거권 운동, 시민권 운동 등을 벌였다. 신사회운동과 핵발전 반대 운동 등을 거치며 지구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관념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영향을 받은 흐름은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 운동. 간디와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마을을 만든 사람들의 전략에 대해 깊이 연구하면서 메이시는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밑바닥에서 출발하기, 그리고 사람들의 지성을 믿기. 오늘날 ‘가짜 뉴스’가 창궐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막아낼 수 있는, 어렵지만 희망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18일 책 출간에 맞춰 공개한 한국인들에게 보낸 축하 영상에서 그는 “‘절망 작업’이라 부를 수도 있고 ‘적극적 희망’ 등으로 부를 수도 있는 이 작업은 40년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시도한 사회적 실험들에 뿌리내리고 있다”며 “우리가 집단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괴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판단을 흐리는 상황이라 해도 우리는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느낌으로써 살아 숨쉬는 지구에 발 딛고 서서 명확히 생각하고, 용기를 얻고, 자신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병적이고 치명적인 경제의 속박에서 벗어납니다.”
결국, 자비이고 사랑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