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신작 <어른들의 거짓된 삶>이 지난 1일 27개 나라에서 동시 공개됐습니다. 그는 영미권에서 ‘페란테 열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소설가입니다. 대표작은 <나의 눈부신 친구>를 비롯한 ‘나폴리 4부작’으로, 1950년대 가난하고 가부장적인 동네에서 자란 레누와 릴라가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하며 저항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신작 또한 한 여성이 어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만나고 유년시절의 끝을 보며 혼란과 격동 속에 자아를 형성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페란테는 최근 세계 번역가·서점인들과 합동 서면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코로나 위기가 여성에게 돌봄을 강제해 여성 권리의 퇴행이 우려된다고 말하더군요. 자신의 소설 속 여성 인물이 익숙한 고향을 떠나는 것을 두고는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겐 조국이 없다고 했지만, 어린 시절 위태롭게 자란 여자들에게는 고향마저 없습니다. 자기 땅에서 억압당했던 사람들은 기꺼이 익숙한 언어를 떠나 보내고 변화를 선택하죠.
1920년대의 여성 문학인들은 고대 시인 사포의 시를 읽으려고 그리스어를 배웠답니다.(<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들>, 임옥희) 익숙한 언어에서 탈주하는 여자들의 목표는 결국 읽기와 쓰기였던 셈입니다. 한권의 소설로 나온 이주혜 작가의 <자두>도 한번 보시죠. 너무나 매끈하여 그 비판마저 판에 박힌 것처럼 들리지 않는 ‘그 가부장제’의 울퉁불퉁한 폭력성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는데요. 지금 어떤 끔찍한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를 멈추지 말라고 말입니다. 힘들 거라 생각은 하지만,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기로 하죠. 손잡아주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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