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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꿈들이 삶을 죽인다, 그런 꿈을 나도 한국에서 꾸고 있다”

등록 2020-09-05 09:22수정 2020-09-05 10:57

[토요판] 커버스토리
시 쓰는 이주노동자

국내 이주노동자 시 묶은 첫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이달 출간
네팔 노동자 35명이 쓴 69편 선별

35명 중 12명 네팔에서 시집 낸 시인
시의 주제·형식·지향별로 모임 꾸려
네팔 노동자 시 모임 국내 6개 활동

공장·농장 일하며 시 짓고 모여 낭송
“말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답답함들
시 읽고 쓰면 막힌 숨통이 트여요”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시만으로 묶인 첫 시집이 나온다. 시인들은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 35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나 그 산을 올려다보며 자란 그들은 고층빌딩들이 산처럼 솟은 나라로 와서 그 나라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하고 시를 쓴다. “꿈들을 꾸역꾸역 담아” 온 낡은 트렁크는 “그 꿈들을 감당할 수 없어” 끝내 “스스로 터져버”(딜립 반떠와 ‘꿈’)린다. “꿈을 낳으려고 노동의 감옥에 갇”(끄리스나 끼라뜨 ‘노동자’)혔지만 그들은 시를 짓고, 모여 낭송하고, 시집을 묶고,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적는다. 한국인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하며 “기계”가 된 그들의 시에서 ‘한국인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한국’이 보인다. 사진은 국내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시 모임 ‘잇떨 아와즈’ 회원인 뻐라짓 뽀무와 그가 쓴 시 ‘묵언의 사랑’의 네팔어 원문. 

한 줌의 숨을 담보 삼아
한 뼘의 땅을 담보 삼아
죽음의 계약서에 서명하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고향을 떠나 사람을 사고파는 도시에서
삶의 전쟁터에서….
(수레스싱 썸바항페 ‘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

훅.

폭염의 습한 거리에서 땀 냄새가 범람했다. 태풍 바비가 남해에 이르기 전날(8월25일) 거제도의 저녁은 쥐어짜면 물이 주르륵 흐를 듯 눅눅했다. 퇴근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이 대우조선해양 서문(경남 거제시 아주동)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머리카락과 옷이 비를 맞은 것처럼 땀으로 젖은 사람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들의 몸에선 손과 발을 써서 생활을 꾸리는 이들이 그날 하루 분량의 삶을 돌리느라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태운 연료 냄새가 났다. 파란불을 받은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땀 냄새를 끌고 도로를 건너면, 뒤따라 “삶의 전쟁터”를 빠져나온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땀 냄새를 빨간불 앞에 세웠다.

조선소가 방류한 사람들의 급류 속에 그 남자도 있었다. 그의 몸에서도 땀 냄새가 났다. 등에서 뱉어낸 땀이 점퍼 위에 얼룩을 남기며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네팔인 수레스싱 썸바항페(33)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용접공이었다.

_____________
삶의 전쟁터에서

“어딘가에 더사인 띠하르 축제가 다가온 것같이/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고운 옷들로/ 사람들이 모습을 바꿀 때/ 나는/ 일년 내내 살기 위해 색을 칠한다.”(같은 시)

수레스싱의 고향은 파타리였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동남쪽으로 30분 날아간 뒤 다시 자동차로 30분을 달려야 닿는 농촌이었다. 쌀농사가 주산업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바다 없는 산악국가에서 2016년 한국에 온 그는 한반도 남쪽 바다의 섬에 배치돼 배를 만들었다. 네팔에선 존재하지 않는 직업인 엘엔지(LNG)선 용접 노동자가 됐다.

축제(더사인과 띠하르는 네팔의 가장 큰 명절들) 때마다 네팔 거리를 물들이던 “오색찬란한 색상들을 떠올리면서” 그는 배에 페인트를 칠했다. 외국에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살 만한 집 사람들이 새 옷을 입고 축제를 즐길 때 그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서 쇠를 이어 붙였다.

네팔 이주노동자 수레스싱 썸바항페(33)는 대우조선해양(경남 거제시)의 용접공으로 일하며 시를 쓴다. 사진 거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네팔 이주노동자 수레스싱 썸바항페(33)는 대우조선해양(경남 거제시)의 용접공으로 일하며 시를 쓴다. 사진 거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수레스싱은 대우조선의 하청업체 노동자면서 그 업체의 단기계약 노동자(고용허가제 E-9 비자)였다. 3년 만기가 되면 1년10개월을 연장할 수 있었다. 4년2개월을 채운 그는 8개월 뒤면 네팔로 돌아가야(귀국 뒤 재입국 허가를 받으면 한 차례 더 3년+1년10개월 근무 가능) 했다.

현재 13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대우조선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그들 중 350여명이 네팔에서 왔다. 이주노동자들 중 가장 많았다. 우즈베키스탄과 베트남, 미얀마 출신들이 뒤를 따랐다. 조선산업이 흔들리면서 작업 현장은 값싼 비정규직과 더 값싼 이주노동자들로 대체되고 있었다. 숫자도 줄었다. 2016년께 850여명이던 네팔 노동자 중 4년 사이 500여명이 빠졌다. 체류 기간 만료 뒤 재입국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경기도나 전라도 등지의 다른 공장으로 일을 찾아갔다.

“뺀띵 거르더이(페인트를 칠하고)/ 깨벌 딴더이(전선을 당기면서)/ 웰딩 거르더이(용접을 하고)/ 그랜딩 거르더이(연마를 하면서)/ 머 빠니저하즈 버나우더이추(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

수레스싱이 조선소 앞에서 자신이 쓴 시의 한 구절을 네팔어로 읊었다. 건조 중인 거대한 배와 건조를 돕는 거대한 크레인들이 그의 뒤에서 거대했다. 경계가 가늠되지 않는 거대한 조선소에서 수레스싱은 매일 아침 용접봉을 들고 ‘우주인’이 됐다.

조선소 용접공들은 몸에 갑옷처럼 두꺼운 방염복을 입었다. 얼굴엔 방독면처럼 생긴 방진마스크를 썼다. 안전모와 보안경도 머리와 눈에 착용했다. 냉각 공기 주입 호스(몸의 열기를 식히는 장치)까지 재킷에 꽂고 배에 매달리면 고장 난 우주선을 수리하는 우주인처럼 보였다.

“부모가 와도 못 알아봐요.”

그는 길이 400m에 높이 50m 안팎의 엘엔지선 외판에 달라붙어 철판과 철판을 연결했다. 엔진룸 밑의 물탱크 안에도 기어들어가 용접봉으로 불꽃을 튀겼다. 용접 위치가 확보되지 않을 땐 “억지로/ 몸을 유연하게 만들고/ 동굴 같은 배 안에서 숨을 헐떡이”며 작업했다.

수레스싱은 시 ‘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를 한국에 온 이듬해 여름에 썼다. “폭염 속에서/ 피부 가죽을 드러내고/ 인공 바람을 끌어안으며/ 달구어진 쇠와 씨름하”면서 그 뜨거운 시간을 시로 옮겼다. 그는 15살 때부터 시를 지었다. 네팔에 있을 땐 지역 매체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도 계속 시를 썼다. 주로 퇴근한 밤에 휴대전화 메모장에 시를 새겼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한 뒤 밤새 시어를 고르는 날도 있었다. 수레스싱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메모장을 훑자 차곡차곡 쌓인 그의 시들이 아래로 주르륵 흘렀다.

“우리는 돈 벌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요. 그 비용을 마련하려고 이자를 주고 대출을 하거나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야 해요. 우리를 보낸 가족들은 우리가 벌어서 보낸 돈에 미래를 걸고 하루하루를 살아요. 우리가 일하는 나라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라도 당하면 고향의 가족들에게 그 나라는 사람을, 그들의 미래를 먹는 나라가 되는 거예요.”

그가 “사람을 사고파는 도시”에 와서 노동을 파는 까닭은 “가족의 작은 행복을 찾”(같은 시)기 위해서였다.

“손바닥 피부가 벗겨지도록/ 허리의 통증이 느껴지도록/ 손목이 끊어지도록/ 삶의 버거운 꿈을 꾸면서/ 그렇다, 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

수레스싱의 시가 이주노동자들의 시만으로 묶인 국내 첫 시집에 실려 이달 중순 출간된다.

그가 먼 나라 한국의 조선소에서 ‘버거운 꿈’을 좇는 이야기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시(‘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로 적었다. 거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가 먼 나라 한국의 조선소에서 ‘버거운 꿈’을 좇는 이야기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시(‘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로 적었다. 거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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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감각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삶창, 이하 <기계 도시>).

시집은 한국에서 일했거나(7명) 일하고 있는(28명) 네팔 이주노동자 35명의 시 69편을 담았다. 출간 계획을 짜고, 시를 모으고, 번역하고, 편집하는 데 3년(아래 기사)이 걸렸다.

시인들은 모두 국내 공장과 농장에 고용돼 일한다. 그들이 노동하며 쓴 시들은 ‘한국인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한국’을 비춘다. ‘그 한국’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지가 한국인들이 떠난 일터에서 한국인들을 대신해 일하는 그들의 언어로 시의 행과 연 사이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① 기계

서로즈 서르버하라는 자동차 부품 공장 노동자였다.

“사람이 만든 기계와/ 기계가 만든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다가/ 저녁에는 자신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구나/ 친구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여기는 사람이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고/ 기계가 사람을 작동시킨다.”(서로즈 ‘기계’)

기계를 돌려 기계를 만들던 그는 이제 자신이 기계가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도/ 새벽이 언제인지/ 밤이 언제인지/ 모르고 살아온 지 수년이 지났다/ 이 기계의 도시에서/ 기계와 같이 놀다가/ 어느 사이/ 나도 기계가 되어버렸구나.”

석달 전 서로즈는 ‘기계 도시’를 떠나 네팔로 돌아갔다. 그와 그들이 기계가 되어 돌린 도시에서 “슈퍼 기계”는 한탄한다.

“나는/ 노을 진 수평선에/ 신처럼 쪼그리고 앉은 늙은 부모님을 버리고 온 사람이에요/ 사장님! 나는/ 출산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내 아내를 버리고/ 자신의 심장을 쪼개서 온 사람이에요/ 삶이 이토록 어려운 시기가 도래해서/ 이제는 당신 기계의 족쇄를 차고/ 슈퍼 기계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어요.”(니르거라즈 라이 ‘슈퍼 기계의 한탄’)

니르거라즈는 네팔에서 개인 사업을 하다 한국에 왔다. 네팔에서 직원을 고용하는 ‘사장님’이었던 그가 한국에서 슈퍼 기계로 고용돼 일했다. 그가 ‘사장님’에게 외친다.

“땀을 흘린 대가로/ 왜 무시를 당해야 하나요? (…) 사장님!/ 이제 내 땀을 무시하지 마세요/ (…) 이 지구상에서/ (나도) 당신처럼 감각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람꾸마르 라이는 대학생일 때 한국에 들어와 이주노동자가 됐다. 람꾸마르 또는 ‘나’(시의 화자)는 날마다 자신을 혹사시키며 일했다. 지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잠깐 일어선 순간 사장이 공장에 들어왔다. “당신의 회사를 내 회사처럼 여기고/ 당신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기계처럼 일하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의심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사장 아버지/ 나는 내 젊음과 목숨을 바쳐/ 할 수 있는 만큼 몸과 마음을 다해/ 당신의 얼굴에서/ 만족한 행복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어요/ 그것은 단지 부질없는 노력이었음을/ 단지 실패한 노력이었다는 것을요.”(람꾸마르 ‘실패한 노력’)

‘기계’와 ‘로봇’.

스스로의 의지보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생산 설비. 네팔 노동자 시인들은 한국에서 그들의 삶을 두 단어에 투영했다.

지난 8월23일 경기도 수원의 한 네팔 음식점에서 ‘잇떨 아와즈’ 회원들이 모였다. 경기 평택과 수원, 대전에서 왔다. 뻐라짓 뽀무(41·남·‘묵언의 사랑’), 수스마 라나허마(29·여·‘할머니의 구루마’), 디빠 메와항라이(27·여·‘색과 꿈’), 바부 벌린드러(29·남·‘시인들의 법정에서 신과 과학’). <기계 도시>에 시를 보탠 그들에게 물었다.

―언제 자신이 기계가 됐다고 느끼나요?

“누군가 작동해야 돌아가는 기계처럼 우리도 사장님이 작동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을 때요. 기계와 같이 일하지만 기계보다 빨리 일해야 할 때도 그렇고요.”(뻐라짓)

―한국을 ‘기계 도시’로 보는 이유는요?

“이렇게 발전한 나라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돌아간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기계가 잘못해서 불량을 찍어내도 우리 잘못으로 불량이 난 것처럼 혼나요. 우리가 기계니까요.”(수스마)

‘기계’ ‘로봇’ ‘죽음’ ‘좌절된 꿈’…
그들 시에서 만나는 한국의 이면과
한국의 일상 떠받치는 그들의 내면

“기계 도시서 어느새 나도 슈퍼 기계”
네팔 노동자 일하는 주요 10개국 중
‘사망자 중 자살자 비율’ 1위가 한국

꿈꾸는 것은 덫에 걸린 것과 같아
“손목 끊어지도록 버거운 꿈 꾸며
그렇다, 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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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모두 끝내고 내일 죽으렴”

기계와 로봇은 감정이 없어야 작업 효율이 극대화되지만 기계와 로봇처럼 일하는 인간에겐 감정이 있었다. 그들은 말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시를 쓰는 까닭이 있을까요?

“시가 좋아서 쓰지만 시 쓰기가 막힌 숨통을 터주기도 해요. 말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을 시로 쓰면서 풀어요. 일이 힘들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네팔의 가족이 그립거나 정치 상황이 걱정될 때, 시를 쓰면 조금 시원해져요.”(디빠)

‘잇떨 아와즈’는 한국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2016년 만든 시 모임이다. 잇떨을 포함해 6개의 네팔 이주노동자 시 모임이 국내에 있다. 대부분 2010년대 초중반 만들어졌다. 모임은 시의 지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꾸렸다. 사랑 같은 보편적 주제의 시를 쓰는 모임도 있고, ‘거절’(페르시아와 아랍에서 시작된 노래시)이나 ‘묵떡’(4줄 형식의 시) 등 네팔 전통 시를 짓는 모임도 있다.

―시를 중심에 둔 이주노동자 네트워크는 네팔 분들 외엔 찾기 힘든데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는 네팔인들 다수가 대학교육을 받았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아요. 네팔에 있을 때부터 시를 읽고 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도 시를 쓰고 나누는 거예요. <기계 도시>에 시를 올린 35명 중 12명이 네팔에서 개인 시집을 냈거나 시를 발표한 사람들이에요.”(뻐라짓)

네팔어 ‘잇떨 아와즈’는 ‘반대의 소리’란 뜻이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부정당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시를 추구한다. 종족(100개 이상) 간 불평등이 존재하는 네팔에서 차별받는 몽골 계통 사람들이 주로 활동한다. 거제도의 수레스싱도 모임의 일원이다. 전국에 흩어져 일하는 회원들(16명 중 6명 귀국)은 주기적으로 만나 시 낭송과 문학 토론을 한다. 일년에 한차례 네팔에서 작가를 초청하기도 한다.

시집 &lt;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gt;에 시를 실은 ‘잇떨 아와즈’(네팔 이주노동자 시 모임) 회원들이 지난 8월23일 경기도 수원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왼쪽부터 디빠 메와항라이(27), 수스마 라나허마(29), 뻐라짓 뽀무(41). 바부 벌린드러(29).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에 시를 실은 ‘잇떨 아와즈’(네팔 이주노동자 시 모임) 회원들이 지난 8월23일 경기도 수원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왼쪽부터 디빠 메와항라이(27), 수스마 라나허마(29), 뻐라짓 뽀무(41). 바부 벌린드러(29).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② 죽음

에어컨 공장 노동자인 디빠는 네팔에서 간호사였다. 2017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네팔에서 챙겨 온 러메스 사연의 책을 보며 한국을 공부했다.

러메스도 네팔에서 시집을 낸 시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의 생활과 노동도 글로 써 네팔에서 출간했다. 한국에서 그는 농업 노동자였다. 비닐하우스에서 하루 18시간 일하면서도 휴가를 얻지 못한 러메스의 경험을 디빠는 그의 책에서 읽었다. 러메스는 지난해 네팔로 돌아갔다. 그의 시 ‘고용’만 한국에 남아 <기계 도시>에 실렸다.

생일을 맞아 휴가를 청하는 ‘나’에게 “내 굶주림의 신”인 “사장님이 말씀”한다. “이번에는 일이 많다/ 내년에 생일을 잘 보내도록 해라.” 시간이 지나 다시 사장님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저에게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한다. “이번에는 일이 많다/ 다른 길일에 결혼하도록 해라.”

일년에 하루도 쉬지 못했다거나(농축산업엔 근로시간·휴게·휴일 적용의 예외를 둔 근로기준법 제63조는 이주노동자 초과노동의 근거로 악용) 휴가를 주지 않아 결혼을 하지 못했다는 문장은 시적 표현이 아니었다. 한국 농축산업 현장에서 흔히 들리는 현실의 이야기였다. 한국인의 밥상은 이주노동자 없인 차려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지 오래였고, 한국의 농축산업은 이주노동자 강제노동으로 국제사회에서 비판받은 지 오래였다. 할 일이 너무 많은 ‘나’는 죽음도 허락받지 못한다.

“하루는 삶에 너무나도 지쳐서 내가 말했어요/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주셨어요/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이제는 나를 죽게 해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죽으렴.”(러메스 ‘고용’)

딜립 반떠와는 네팔에서 고등학교 교사였다. 한국에선 소를 키우는 축사에서 일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는 풍경을 덤덤하게 썼다.

“내가 죽는다면/ 누워 있는 내 몸이/ 내일 늦은 시간까지 침대에 있으리라/ 제시간에 출근할 수 없으니/ 화가 난 사장님이 내 방문을 열리라/ (…) 서서히 사람들이 모이고/ 내 죽음의 이유를 찾기 위해/ 방을 수색하리라/ 사장님은 방문 옆에서/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두려움에 떨고 있으리라.”(딜립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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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이 심하다”

―죽음을 말하는 시들이 시집에 많아요.

“한국에 오기 전 가졌던 기대가 한국에 와서 무너지는 일들이 생겨요. 네팔에선 고학력자들이지만 일자리가 없으니까 한국에 오잖아요. 노동환경은 열악한데 수모와 차별까지 당하면 절망할 수밖에 없어요. 위로해줄 가족도 없어 괴로워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수스마)

국내 이주노동자들 중 네팔 노동자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40명(노동환경건강연구소 2019년 12월 ‘한국 내 네팔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네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주요 10개국 가운데 ‘사망자 중 자살자 비율’(32.1%)이 최고인 나라는 한국(네팔 정부의 2008~2014년 조사 보고서, 뒤이어 쿠웨이트 21.7%, 일본 14.3%, 말레이시아 12.1% 순)이다.

네팔 노동자들에게 한국은 가장 취업이 어려운 나라에 속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제도(고용허가제)를 통하므로 별도의 ‘브로커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한국어능력시험 경쟁이 치열해 고등교육 이수자나 지식인층이 합격자 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이 ‘기계’가 되면서 겪는 갈등이 높은 자살률의 한 원인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수료증들을 상자에 담아둔 채/ 허름한 여권에 도장을 받고/ 양과 염소의 무리들처럼 줄을 서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문맹처럼/ 로봇을 만드는 나라에서 로봇이 되어/ 자신의 성실한 노동의 시간을 보낼 때/ 가끔은 휴대폰의 사진첩을 본다/ 그 사진첩 맨 아래 가려져 있는/ 대학교 졸업식 가운을 입고 찍은/ 나의 졸업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딜립 ‘나’)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③ 꿈

2년 전 디빠는 퇴근 뒤 음식을 만들다 칼을 떨어뜨려 발을 다쳤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불안했다. 다시는 일을 못 할까, 더는 한국에서 돈을 못 벌까, 이대로 네팔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답답한 마음으로 시를 썼다.

“덫에 걸린 것일까/ 입술이 알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고/ 가까이에 컵과 물들이 가득하지만/ 목마름이 심하구나.”(디빠 ‘색과 꿈’)

꿈이 있다는 것은 덫에 걸린 것과 같았다. 이룰 수 없는 꿈은 풀 수 없는 갈증이었다. 지구는 평평하지 않았다. 한쪽이 부풀면 다른 쪽은 쪼그라들었다. 가난한 노동을 팔아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그들이 과거 가난한 노동을 팔아 경제를 일군 나라로 와서 이젠 그 나라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며 꿈을 좇았다.

수스마는 디빠의 공장 동료였고 함께 집을 얻어 살았다. 그는 예전 공장에서 몇달치 임금을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고용노동청에 신고한 뒤 겨우 체불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막막할 때마다 공장 근처 공원에 갔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무수한 꿈들이 피어”(수스마 ‘공원 풍경’)오르고 가라앉았다. 그가 꿈을 들었다 내려놨다 하는 동안 공원 앞에선 한 할머니가 리어카에 채소를 놓고 팔았다. 날이 어두운데도 팔리지 않은 채소가 남아 있으면 수스마는 네팔의 할머니가 생각나 지갑을 털어 채소를 샀다.

“눈부신 발전을 해도/ 가난과 결핍은/ 어디에나 넘쳐난다/ 길거리에도 사거리에도 골목 구석구석에도/ 하여/ 할머니의 구루마는/ 매일 저녁마다 그렇게 굴러가고 있다.”(수스마 ‘할머니의 구루마’)

거제도의 수레스싱은 월급의 70% 이상을 네팔의 가족에게 보냈다. 조선소 일감이 줄면서 월급도 줄었지만 네팔로 송금하는 돈의 비율은 유지했다. 그가 4년 동안 한국에서 번 돈으로 부모님은 힘든 농사를 그만둘 수 있었다.

6개월 전 네팔에 다녀올 계획이었던 그는 코로나19로 일정을 취소했다. 아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년 전이었다. 수레스싱은 결혼 13년째였다. 한국에 오기 전 카타르에서 식당 일을 했던 8년과 한국에서의 4년을 더하면 아내와 산 기간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수레스싱과 같은 시기에 한국에 온 친구가 있었다. 2017년 함께 밥을 먹고 집에 돌아간 친구가 이튿날 아침 사망한 채 발견됐다. 심장마비로 추정됐다. 그 친구를 보내며 쓴 시가 있었다.

“꿈들이 삶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꿈은 살인자가 되고/ 그런 꿈을 나도 한국에서 꾸고 있다.”(수레스싱 ‘꿈’)

친구의 꿈이 그를 죽게 했다. 꿈 때문에 한국에 왔고 꿈 때문에 위험한 일도 했다. 꿈을 꾸지 않았다면 친구는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고 수레스싱은 믿었다.

그도 “그런 꿈”을 꾸며 한국에 있었다. 이주노동을 마치면 네팔에 모텔 딸린 식당을 내는 것이 그와 아내의 바람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네팔로 돌아가 더는 떠돌지 않고 가족과 살고 싶었다. 그 평범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꿈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수레스싱은 매일 가슴에 새겼다.

그렇게 그는 ‘찢어진 꿈’(딜립 반떠와 ‘나’)을 용접하며 오늘도 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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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가 나오기까지

‘잇떨 아와즈’가 2018년 2월 경남 김해에서 시 낭송 모임을 연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뻐라짓 뽀무 제공
‘잇떨 아와즈’가 2018년 2월 경남 김해에서 시 낭송 모임을 연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뻐라짓 뽀무 제공

“우리의 빈곤한 영혼 아프게 확인”

한국·네팔 문학 교류 과정에서 논의
노동자 시인들 SNS 소통하며 선별

종족별 언어 섞여 번역 애먹기도
출간 계획부터 번역·편집까지 3년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만의 시를 모아 펴내는 첫 시집(이달 중순 출간)이다.

69편의 시를 쓴 35명의 시인은 모두 네팔 출신 노동자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지닌 나라에서 태어나 그 산을 올려다보며 자란 그들은 고층빌딩들이 산처럼 솟은 나라로 와서 그 나라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하고 시를 쓴다.

그 산 에베레스트는 “산처럼 쌓인 고통”(어이쏘르여 쉬레스터 ‘친구’)으로, “정상을 밟으려는 꿈”(마뜨리까 넴방 ‘계속되는 꿈들’)으로, 그 높이만큼 쓰고 싶었던 글(순덜 가울레 ‘사진이 스스로 말한다’)로, 삶의 지평선을 내려다보며 목적지가 어디인지 자문하는 장소(디빠 메와항라이 ‘목적지’)로 시집에 등장한다. 한국에서 그들이 놓인 열악한 노동환경, 가족을 지킬 돈을 벌며 맞닥뜨리는 절망, 한국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꿈들이 그 산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그들을 ‘최저보다 아래’에 두고 그들의 노동으로 고도를 높이는 한국의 모습이 산을 찌른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정대기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 총장대행의 지원이 있었다.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과 문학과 예술로 교류하며 후원해왔다. 2017년 한국과 네팔의 문인들이 양국을 서로 방문하며 문학·학술 행사를 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시를 묶어 내기로 스러원 묵까룽 네팔작가협회장과 뜻을 모았다. “한국에서 일하며 충격과 갈등을 겪는 네팔 청년들이 시를 통해 자존을 지킬 수 있길”(정대기) 바랐다.

그해 여름 스러원이 명지대에서 열린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시 쓰는 네팔 노동자들이 그를 초청해 시 낭송 행사를 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뻐라짓 뽀무(시 모임 ‘잇떨 아와즈’)에게 스러원은 한국의 네팔 노동자들 시를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뻐라짓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네팔 이주노동자 시 모임들(6개)과 에스엔에스(SNS) 대화방으로 소통하며 시를 골랐다. 그렇게 고른 시들이 지난 2월 이기주 번역가에게 전달됐다. 그는 3년 전 명지대 학술대회의 네팔어 통역이기도 했다.

네팔은 100개 넘는 종족이 각자의 언어를 가진 국가였다. 시는 공용어인 네팔어로 쓰였지만 시인들이 속한 종족어가 섞여 있어 번역에 애를 먹었다. 그때마다 남편 모헌 까르끼가 “네팔어 사전” 역할을 했다. 네팔인 작가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모헌은 아내가 난해한 단어를 만날 때마다 뜻의 이해를 돕고 맥락을 풀어줬다. “네팔 시가 한국인들에게 낯설 수 있지만 한국의 일상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삶과 내면을 문학의 언어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두 사람은 기대했다.

시의 완성도가 고르진 않다. 습작시 수준의 시들도 있지만 한국인 독자들의 생각을 때리고 깨우는 시들도 적지 않다. 황규관(삶창 대표) 시인은 ‘해설’에 이렇게 썼다.

“이들의 시는 거의 본능적으로 한국의 근대가 어떤 이면을 가졌는지 날카롭게 간파한다. 우리는 시를 통해 이들의 심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빈곤한 영혼을 아프게 확인한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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