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세종시가 조성되기 훨씬 전인 14년 전,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가 ‘출입처’였다. 주거지는 동부 수도권. 지하철을 두 차례 갈아타고 한참 걸어들어가야 하는 출퇴근 시간은 왕복 4시간가량 됐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 지하철에는 책과 신문을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때, 장거리 통근자 가방에 책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문자중독자의 일상이 그러했다.
지하철에서 신문지를 뒤적이는 사람도, 책장을 넘기는 이들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눈과 손이 꽂힌 스마트폰 불빛만 휘황하다. 만원 지하철에 맞춤한 기기인가 싶기도 하다. 가끔 소스라치게 놀란다. 볼 것도 읽을 것도 없이 스마트폰 비비기에 여념 없는 나의 손가락이며, 위아래로 굴리고 있는 내 눈알이며. 이보다 더한 중독이 있을까. 5G 시대에 가상·증강현실 서비스가 현실화하면 지하철과 거리는 또다른 광경으로 변모하겠지.
드론 택시가 날아다니고 자율주행차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일이 머잖아 일상이 될 것 같다. 쿠팡과 마켓컬리로 새벽배송 물건을 받고, 배민으로 음식을 시켜 먹으며, 카카오택시와 티대리를 앱으로 부르는 첨단의 시대. 그런데 내 책상 위에는 온갖 책이 쌓여있고 눈을 돌리면 사방이 책의 장벽들이다. 게다가 이곳은 신문사다. 크고 작은, 하얗고 누런 종이와 종이들이 넘쳐나는.
종이책을 읽고 기사를 쓰고 종이신문을 만드는 일. 그나마 조금은 느리게, 매일이 아니라 매주. 시대역행적인 일만 같다. 철기 시대에 청동기를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철기시대라 해서 청동기의 가치가 추락했던 것은 아니다. 귀한 구리 대신 흔한 철을 썼던 것일 뿐이다. 책과 글이 철기 시대 구리의 값어치를 유지할 수 있기를,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류의 지혜가 찬란한 빛을 잃지 않기를.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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