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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 걸음 물러서서

등록 2020-12-04 04:59

[책&생각] 책거리

너무 가까이서 보면 눈 나빠진다~.

어릴 적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은 잔소리입니다. 아직도 기억 언저리를 맴돕니다. 안방 윗목에 놓인 문짝 달린 브라운관 앞으로 나도 모르게 다가갔죠. 별수 없이 물러섰지만, 어느새 자석에 끌려가듯 또다시 텔레비전 앞에서 턱을 괴고 있었습니다.

끌리는 책을 만나면 딱 그짝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여름 한철을,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조리 읽어대며 보낸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나른한 주점에서 대낮부터 맥주를 홀짝이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재즈도 제법 흘러나오고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겁니다.

커다란 티브이 시대에 화면 앞까지 얼굴을 들이댈 일은 없겠죠. 한두 계절이 더 지난 뒤로는 하루키가 청량음료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걸음 떨어져 보면 조금 달리 보이더군요. 당장 가까이서 보지 못하던 것이 드러납니다. 더 큰 그림이 보이거나 그려지고 좀 더 알 것 같고 더 깊이 느껴집니다. 더욱 정교하고 묵직해진다고 여겼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벌써 달력과 수첩이 나오는 계절인데 이곳저곳의 지루한 싸움은 언제 마무리될지 가늠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면 역사가 보이고, ‘여기’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데는 문학이 유용합니다. 지금, 여기를 더 잘 알게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가끔, 맥주도 마시고 재즈도 듣고 심각한 표정도 지어보는 게, 여러모로 건강한 일입니다. 그간 밀쳐둔 책도 읽고 때때로 생각도 하면서 말이죠. 마침 ‘거리두기’는 공동체를 위한 의무입니다. 몸도 마음도, 당신도, 우리도, 건강해져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 조금만, 물러서보시죠. 뭐가 보이시나요?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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