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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랑시에르식 한국사회 읽기

등록 2020-12-25 04:59수정 2020-12-25 08:41

드물고 남루한, 헤프고 고귀한
최정우 지음/문학동네·1만8000원

드물고 남루한, 헤프고 고귀한. 수수께끼같은 제목이다. 어딘가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의 한 구절(“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을 떠올리게 하지만, 쌍을 이룬 형용사들끼리 뚜렷한 심상의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구와는 차이가 분명하다. 책의 정체는 ‘미학의 전장, 정치의 지도’라는 부제가 지시하듯 정치와 미학의 관계를 탐문하는 철학적 에세이다. ‘드묾’과 ‘고귀함’이 미학에 대응한다면, 정치에 대응하는 형용사는 ‘남루함’과 ‘헤픔’이다. 흥미롭게도 글쓴이는 미학과 정치의 표지를 하나씩 떼어내 섞은 뒤 제목으로 이어붙여 놓았다. 엘리아데가 말한 ‘성과 속의 변증법’처럼 성스러운 미학과 속된 정치가 애초부터 불가분의 실존 범주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글쓴이의 인식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에 의지하고 있다. 랑시에르는 우리가 ‘정치’라고 부르는 것(실제로는 ‘치안’에 불과한)의 본질이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있다고 본 인물이다. 정치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만질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누고 지킴으로써 지배질서 유지에 복무하는 감각의 체계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의 배후에는 ‘감각적(감성적)인 것’을 다루는 미학이 존재하며, 정치는 미학 그 자체가 된다. 글쓴이가 볼 때, ‘우리’와 ‘그들’, ‘국민’과 ‘난민’,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을 관통하는 것도 랑시에르가 말한 것과 같은 ‘미학-정치’다. 이 책은 ‘미학-정치’의 인식틀에 기초해 세월호·용산참사·촛불·민족주의·젠더·이주민·바이러스 등 21세기 한국사회의 풍경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읽어나간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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