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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치와 경제 어우러진 음모와 복수극

등록 2021-01-22 04:59수정 2021-01-22 11:01

뻐꾸기, 날다

고광률 지음/강·1만6800원

고광률(사진)은 요즘 한국문학에서 드물게 선 굵고 외향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다. 1980년 5·18에서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를 추리적 기법에 담은 <오래된 뿔>(2012), 대학 교수 사회의 비리와 암투를 그린 <시일야방성대학>(2020) 같은 장편과 <복만이의 화물차>(2018)를 비롯한 중단편집들에서 그 점은 뚜렷했다.

그의 신작 장편 <뻐꾸기, 날다> 역시 작가 특유의 주제의식과 형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저축은행 회장으로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아버지 허남두가 파산한 데 이어 사고로 위장해 살해당한 뒤, 그 아들인 허동우가 벌이는 복수극이 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당 대표였던 백대길 전 도지사, 그의 동지이자 수족과도 같은 안우용 전 부지사, 당 정책자문위원장 강형중 교수, 당의 기획자 역할을 했던 나삼추, 당 청년조직위원장인 조폭 조왕구 등이 허동우가 점찍은 복수 대상들이다. 정계와 재계, 학계와 조폭의 세계 등이 얽히고 설키며 펼쳐지는 복수와 음모, 추리와 폭력의 활극이 영화를 보듯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백 대표는 오이재를 철새로 이세갑을 오만한 샌님으로 봤고, 오이재는 백 대표를 순진한 고집불통으로 이세갑을 세상물정 모르는 쪼다로 봤고, 이세갑은 백 대표를 군자연하는 속물로 오이재를 천방지축 양아치 새끼로 봤다.”

지역 기반 정당의 당권 경쟁자인 세 정치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는 정치가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잃고 한갓 정략으로 전락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허동우는 복수 대상자들에게 협박 편지를 보낼 때 정체를 숨기고자 두보의 시를 자주 인용한다. 민중의 애환을 담은 두보의 시들은 일종의 숫자 수수께끼로 구실함과 동시에 저들이 잊고 있는 정치와 경제의 본디 취지를 새삼 일깨우기도 한다.

허동우의 복수극은 납치와 감금, 살인과 폭행 등으로 이어지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욕망과 약점에 떠밀려 아수라장과도 같은 사태의 한복판으로 돌진한다. 주요 인물들이 죽거나 몰락하면서 허동우의 복수극은 성공을 거두는 듯하지만, 그것으로 상황이 깔끔하게 종결되는 것은 아니며 그 뒤에는 또 다른 아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소설 결말은 섬뜩하게 알려준다.

대체로 거칠고 어두운 세계가 그려지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편의 권력욕을 혐오하며 남편과 무관하게, 또는 남편의 죄를 대신 갚고자, 노인들과 철거 대상 지역민 등을 찾아 봉사를 하다가 봉변과 폭행을 당하는 백대길 부인 봉이순이 대표적이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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