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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성장과 화해의 드라마

등록 2021-01-29 04:59수정 2021-01-29 11:22

[책&생각] 이권우의 인문산책

오디세이 세미나
대니얼 멘델슨 지음,민국홍 옮김/바다출판사(2019)

<맹자>를 보면 ‘이의역지’(以意逆志)라는 말이 나온다. 고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대목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흥미로운 것은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를 강조하면 글쓴이가 본디 말하고자 했던 바에 충실한 독법이 된다. ‘의’에 무게중심을 두면 읽는 이의 비판적이며 창조적 독법을 강조하게 된다.

대니얼 멘델슨의 <오디세이 세미나>는 ‘의’와 ‘지’가 충돌하는 고전교육의 현장을 감동 있게 그려냈다. 고전학자인 지은이가 새내기 대학생을 대상으로 <오디세이>를 강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81살의 아버지가 이 수업을 들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수업이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발언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청강을 받아들였다.

첫 수업부터 약속은 깨졌다. 서시 부분을 강의하는데, 아버지는 불쑥 논쟁적인 말을 던졌다. 오디세우스는 결단코 영웅이 아니란다. 함선 12척을 가득 채웠던 그 많은 부하를 잃고 혼자 살아돌아온 인물이 어떻게 영웅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겠냔다. 자신의 지식과 삶을 바탕으로 한 ‘의’의 해석이다. 고전학 교수로서 ‘지’의 해석으로 맞받아쳤다. 유혹과 고난을 이겨내지 못한 부하들을 강조해야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면모가 도드라지는 법이다.

‘의’의 관점이 ‘지’의 해석을 풍요롭게 꾸며주는 일도 일어났다. 오디세우스는 왜 칼립소가 약속한 영원한 삶을 뿌리치고 귀향했을까? 시인은 그 이유로 “같은 생각”을 들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배우자는 운명이 맺어주는 법이라는 내용의 가사였다. 학생들의 기발한 의견이 튀어나왔고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겉으로는 변하지만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다시 아버지가 나섰다. 기억이라고. 젊은 세대는 절대 말하지 못할 답변이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오디세우스를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의 도움을 받고 자주 울고 다른 여인과 동침했다는 점을 들었다. 아들은 이런 해석이 왜 가능한지 충분히 이해한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난파당하고 나서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해안 쪽으로 미친 듯이 헤엄”친 삶이었다. 아버지는 살아오면서 운 적이 없다. 하지만 아들 처지에서 그 냉정함과 엄정함에 진저리가 났다. 개방적이고 온화한 어른을 마음속 아버지로 섬겼던 까닭이다. 텔레마코스가 돼지치기를 만나는 대목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오디세우스는 “자기의 아들이 다른 사람을 진짜 아버지처럼 대하는 것을 보고 앉아 있어야 했던 것이 틀림없이 힘들었을 것이다.”

<오디세이>를 저류하는 주제는 아들 텔레마코스의 성장이다. 권력을 장악하지도 못했고, 재산도 지켜내지 못했고, 어머니도 뺏길 판이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아버지와 함께 구혼자를 징벌한다. 지은이는 오디세이를 강의하며 아버지가 성장의 밑거름이었음을 인정한다. 아버지의 삶이란 한마디로 “아버지만 한 아들이 없다는 호메로스의 확률론을 뒤집자는 것”이었잖은가.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이 오디세우스적 모험이다. 아직도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잊지 말자. 당신이 아버지라면, 오디세우스가 그러했듯, 영웅이라는 사실을.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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