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얼굴 실험’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눈을 마주친 엄마를 그대로 따라 합니다. 웃으면 웃고 손짓을 하면 손짓 하고 엄마의 시선이 미치는 곳을 바라봅니다. 한참 이렇게 놀다가 엄마가 갑자기 굳은 얼굴을 보여주면, 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되돌리기 위해 애씁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으면 소리를 지르고 흥분 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적당한 흥분 상태에서 엄마가 다시 환한 표정을 보여주면 아이는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회복됩니다. 표정으로 드러나는,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족들의 심리 치유에 힘써온 권수영 연세대 신과대학장의 <치유하는 인간>(이비에스 북스·2020)에서 읽었습니다. 범람하는 ‘힐링’ 유행에서 보물을 얻은 기분입니다. 권 교수는 공감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무릎을 친 것은 공감과 문제해결을 설명하는 대목에서였습니다. 그리스어 ‘에포케’(epoché)는 판단을 일시 중지한다는 철학 용어입니다. 공감에 이르기 위한 필요조건은 다짜고짜 판단하려 들지 않는 태도라는 겁니다. 머리로 판단하기에 급급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태가 어떤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문제 해결의 의지로 충만하고, 답을 다 알고 있다고 여기고, 신속한 판단만을 금과옥조로 여긴다면 오류를 범하고 맙니다.
마주 보며 판단하는 것도, 판단하지 않기 위해 외면하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마주 보되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공감에 이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럴 땐 ‘괄호치기’를 해보라고 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제안합니다. 과거 경험에 기반한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이 공감을 방해한다면, 그 과거 경험을 우선 괄호 안에 묶어두고 마주 보기를 시작하라는 것이겠죠. ‘나는 결코 상대방에 대한 답을 가질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말이죠.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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