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 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정주연 옮김/궁리(2021)
조지핀과 콘스탄티아는 아버지 장례식에서 관이 묘지를 향해 내려가는 동안 ‘아버지 허락을 안 받고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 순간 더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파묻었어. 어린 계집애 둘이 나를 파묻었어!” 자매는 아버지의 호통과 함께 지팡이가 쿵 하는 소리까지 환청으로 듣고 만다. 아버지를 마주치게 될까 봐 죽은 아버지의 옷장도 선뜻 열지 못하다가 결국 콘스탄티아는 ‘평생 두 번 정도밖에 해본 적이 없는 놀라울 만큼 대담한 일’을 한다.(‘죽은 대령의 딸들’)
가정교사로 채용되어 영국에서 독일까지 혼자 여행하게 된 젊은 여성은 오로지 안전을 위해 배의 ‘여성 선실’과 기차의 ‘여성 전용’ 칸을 골라 타지만, 여정 내내 남자들의 틈입을 경험한다. ‘안전하도록 뒤를 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냉혹한 현실에 유일하게 친절을 베푸는 노신사를 만나 마음을 열어보지만, 순수한 믿음은 폭력적인 추행으로 배반당한다.(‘어린 가정교사’)
화려한 가든 파티를 준비하던 로라는 이웃의 젊은 짐마차꾼이 낙마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족에게 아무래도 파티를 전부 그만두어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매도 어머니도 그런 로라의 생각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다 망쳐버리는 건 다른 사람 생각을 전혀 안 해주는 거’라고 맞선다. 방으로 돌아온 로라는 어머니가 준 아름다운 모자를 쓴 자신의 어여쁜 모습을 거울로 보고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 말이 맞기를 바라고’ 만다. 그러나 파티가 끝나고 불행을 당한 이웃에게 음식과 꽃을 가져다주라는 뜻밖의 심부름을 하게 된 로라는 어쩌다가 죽은 남자의 시신 앞에 서게 되고, ‘아이처럼 큰 소리로 흐느끼며’ 말한다. “제 모자 죄송해요.”(‘가든 파티’)
이웃의 결혼식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하게 된 브레헨마허 부인. 하객들은 ‘애 딸린’ 신부의 처지를 수군대고, 남편 브레헨마허 씨는 너스레 가득한 축사로 손님들을 웃기지만, 부인은 전혀 재미있지 않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웃는 것’만 같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브레헨마허 씨가 앞에서 성큼성큼 걸었고 부인은 뒤에서 휘청거렸다.’) 부인은 결혼 첫날 밤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왔던 모습을 떠올리고, 여전히 무심하고 이기적인 남편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온 세상이 다 똑같아. 그래도, 젠장, 정말 너무 바보 같잖아.”(‘브레헨마허 부인, 결혼식에 가다’)
뉴질랜드 태생의 캐서린 맨스필드는 ‘좋은 결혼’에 도움이 되라고 보내진 영국 학교에서 문학을 접하고 평생 글 쓰는 삶에 매진했다. 한없이 자유로웠던 영혼은 시대와 관습의 속박에 갇혀 큰 상처를 입었고 짧은 생애의 상당 시간을 우울증과 폐결핵 투병에 시달렸지만, 서른넷 나이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80여 편의 단편 소설을 써내고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단편집 <가든 파티>에 수록된 작품들은 20세기 다양한 계층과 처지의 여성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불안과 고통, 복잡하기만 한 삶의 단면들을 절묘하게 포착해낸 수작들로 대다수가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며 요양 투병 생활을 했던 1920~1922년에 집필되었다. 여성 작가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꼭 백 년 전 여성들의 불안한 모습들이 지금 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브레헨마허 부인처럼 분노하고 콘스탄티아처럼 결단할지도 모르겠다.
이주혜 소설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