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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그때 그 시절 그 집에 막내가 있었네

등록 2021-03-26 04:59수정 2021-03-26 10:11

막내의 뜰
강맑실 글·그림/사계절·1만6000원

순하고 온화한 느낌에 휩싸여, 책장을 넘길수록 아련하고 아득한 마음이 차올랐다. <막내의 뜰>에서 7남매의 대가족이 서로 부대끼고 보듬고 매만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니, 그리움이 사무치는 듯하다.

‘막내’를 중심에 놓고 아버지와 엄마, 큰언니, 큰오빠, 작은오빠, 작은언니, 별언니와 밝오빠가 어우러진 가족 이야기이다. 잦은 이사로 여러 집에 산 경험이, 기억을 들추어 되살리는 모티프가 된다. 주로 관사다. 중고교 교장을 지낸 아버지는 높은 분들께 상납하지 않는 ‘고지식함’ 탓에 학교를 자주 옮겨 다녔다. 그만큼 막내는 다양한 집에서 유년의 경험을 쌓아갔다. 막내는 서울로 진학한 언니오빠들보다 집에 얽힌 기억이 더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글은 단정하고 간결하다. 지은이의 첫 책이지만 뛰어난 편집자이자 기획자로 수십년간 한국 출판계에 큰 획을 그어온 출판사 대표가 썼으니 내공은 감춰지지 않는다. 자신을 3인칭으로 떨어뜨려 놓고 유년 시절을 풀어놨다. 특히 그림이 여운을 남긴다. “학교 다닐 때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로 낙인찍힌” 지은이는 “40여년 만에 다시 그림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2년가량 그림을 배우며 “마음대로” 그리다 어릴 적 살던 집을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집의 평면도를 그리다 유년의 기억들을 떠올려 글로 쓰고 그림을 곁들였다. 그림은 더더욱 꾸밈없다.

강맑실 대표가 ‘막내’다. 연희전문 문과 출신으로 최현배 선생에게 배운 아버지가 지은 이름은 어여쁜 우리말이다. 별언니와 밝오빠도 우리말 이름을 줄여 별칭으로 이른 터다. 책 가운데 적산가옥 평면도에 별메언니와 밝내오빠라고 온전한 이름이 딱 한 번 나온다. 맑고 밝고 빛나는 이름을 지은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진다. 하늘색 원피스 입은 막내를 보고 아버지는 “우리 딸이 하늘 한 조각을 걸치고 왔구나”라고 말했다고, 그 막내는 기억해낸다. “지가 내 맘을 어치케 알 것이여, 어치케.” 막내는 속상한 엄마의 혼잣말도 잊지 않았다. 막내를 안고 “내 강아지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쓰까잉?” 하는 엄마였다.

긴 세월이 흘러 이렇게 떠올릴 수 있는 유년 시절은 살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풍랑을 헤치며 혼자서 노를 젓는 듯한 기분이 들 때 (…) 세상이 요구하고 강요하는 삶의 방식과 잣대를 좇지 않을 나만의 낙관과 의지는 (…) 다 기억해내지 못하는 저 유년의 끝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건 아닐까.” 생의 항로에서 높은 파도와 맞닥뜨려 방향을 잃고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순간, 각자의 유년과 다시 “손잡을” 일이다. “쓸쓸했건 달콤했건 외로웠건 고통스러웠건 유년은 찬란한 빛으로 우리를 기다”릴 테니.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그림 사계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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