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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문 걷어내고 당신과 만나겠다는 의지

등록 2021-04-01 18:03수정 2021-04-02 05:08

[책&생각] 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샤이앤 지음/꿈꾼문고(2020)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말랑 지음/꿈꾼문고(2020)

일러스트 장선환
일러스트 장선환
지난해 가을, 경남 김해의 작은 책방에서 인권활동가 먼지와 함께 관계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른 명의 중학생이 함께한 자리였다.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의 반응에 안심했는지 먼지가 뒤늦게 자기소개를 덧붙였다. “저는 트랜스젠더이기도 해요. 정확히는 논바이너리 혹은 젠더 퀴어라고 불려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단어는 저를 담지 못해요.”

질문 시간, 학생들은 손을 들고 물어보았다. “수술하지 않아도 트랜스젠더라고 할 수 있나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별이 있나요?” ‘당신이 궁금하다’는 마음이 담긴 질문이었다. 먼지는 “의료 과정을 거치지 않은 트랜스젠더도 많고”, “수술 여부가 트랜스젠더의 자격이 되지 않으며, 세상에는 다양한 성별이 있다”고 답했다.

강연이 끝나자 한 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저는 작가님과는 생각이 다른 페미니스트였어요. 여성성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트렌스젠더가 여성 인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해왔거든요. 트랜스젠더를 실제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학생은 긴장한 얼굴로 먼지에게 다가가 노트 맨 앞 장에 사인을 부탁했다. 먼지는 사인과 함께 메시지를 남겼다.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의 존재는 충분해요.’ 빨강과 파랑으로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각종 성별 입력 칸 앞에서 망설이던 먼지는 자신이 겪은 소외로 다른 소외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소외가 연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먼지를 통해 배웠다.

최근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고유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이들을 밀어낸 단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랜스젠더. 성별 이분법을 벗어난 존재. 그 이유만으로 군대에서, 학교에서, ‘우리’에게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당당한 사회의 민낯을 보며, 나는 자신의 편견을 반성하던 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소수자는 소문으로 존재한다. 소문은 개인의 구체성을 흐릿하게 만든다. 당사자가 현실에서 어떤 심리적, 경제적, 법적 어려움에 처하는지는 관심 없이, 모든 화살을 개인에게 돌린다. ‘네가 이상하니까 차별받는 거야. 네 존재가 문제야.’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두 책은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편견과 소문을 걷어내고 현실을 보여준다. 트렌스젠더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성별이 있는지, 내 몸과 불화하는 이질감은 어떤 느낌인지, 의료적 수술에는 어떤 위험과 얼마만큼의 비용이 따르는지, 법적 성별 정정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다정하게 알려준다.

샤이앤은 우연히 본 영상에서 트랜스젠더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 뒤로 많은 소수자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며, 모든 것이 막막하고 어둡기만 할 때 이 책이 작은 불빛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책의 추천사에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 대한민국 육군 하사 고 변희수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가 살아생전 잠시라도 마음을 기댔을 이 책을 그의 말을 빌려 추천하고 싶다. “용기 있는 두 작가의 펜이 혐오자들의 낡고 녹슨 칼을 부러뜨리길 기원하며 이 책을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홍승은 집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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