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종말: 정점에 다다른 세계 경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디트리히 볼래스 지음, 안기순 옮김/더퀘스트·1만7000원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게리 베커가 고안한 ‘가족 규모의 경제학’을 적용하면, 부모는 막내를 양육할 때의 한계효용이 한계비용과 같은 수준에서 자녀 수를 선택한다. “각 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자녀를 키우는 데 시간을 소비하느라 가족이 놓치는 소득”인데, 경제가 발전할수록 임금이 상승하면서 부모의 시간이 더욱 가치를 띠게 되고, 자녀를 더 낳아 양육하느라 들어가는 한계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여느 경제적 결정과 마찬가지로 자녀 수를 줄이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성장의 종말>의 지은이 디트리히 볼래스는 이 내용을 소개하면서 “출산율 하락은 매우 넓은 의미에서 생활 수준 향상에 대한 반응 즉 성공의 징후”라고 말한다. 이른바 ‘성장경제학’을 천착해온 경제학자로서 그는 ‘성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선진국에서 성장률이 둔화하는 현상은, 흔히들 오해하듯, 뭔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 책의 주제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번역판보다 원제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 . 직역하면 <완전히 성장한: 왜 침체된 경제는 성공의 신호인가>다. 번역판의 부제처럼 ‘정점에 다다른 세계 경제의 돌파구’를 찾는 내용은 책에 없다. 대신 각종 통계와 경제이론을 동원해 왜 성장 둔화가 성공의 신호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분투한다. 주류 경제학 안에서의 내부투쟁의 결과로 읽히는 책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