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황금가지·1만3800원
1991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부의 한 가게에서 한인 주인 두순자와 손님으로 온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할린스가 가방에 주스 한 병을 넣고 손에 지폐를 들고 계산대로 왔는데, 손에 든 지폐를 보지 못한 두순자가 그를 도둑으로 오인하고 주스 병을 뺏으려 하자 덩치가 컸던 할린스가 두순자의 얼굴을 여러 차례 때려 쓰러뜨린 뒤 주스 병을 카운터에 놓고 가게를 나가려 했으며, 이때 두순자가 권총으로 소녀의 뒤통수를 쏘아 숨지게 한 것이다. 재판에서 배심원은 두순자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지만 백인 여성 판사는 집행유예 5년에 4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 및 500달러 벌금형을 판결했다. 이 사건과 재판 결과는 흑인들의 분노를 샀고, 이듬해 4월 흑인들이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가게들에 방화하고 동양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엘에이(LA) 폭동’에 빌미를 주었다.
한국계 미국 작가 스테프 차의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1991년의 이른바 ‘두순자 사건’과 이듬해 벌어진 엘에이(LA) 폭동이 남긴 유산을 다룬다. 사진은 1992년 4월30일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 버몬트 애비뉴에서 폭도들이 지른 불에 타버린 상가 건물들의 모습이다. 로스앤젤레스(미국)/AP 연합뉴스
한국계 미국 작가 스테프 차(35)의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두순자 사건과 엘에이 폭동을 소재로 삼았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미스터리·스릴러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두순자 사건을 모티브로 해 한인과 흑인 두 가족 구성원을 등장시킨다. 소설은 스물일곱 살 한인 여성 그레이스 박과 마흔한 살 흑인 남성 숀 매슈스를 초점화자로 삼은 장들이 갈마드는 형식을 취해, 28년 전 흑인 소녀 에이바의 죽음이 불러온 상실과 복수, 사랑과 갈등, 사죄와 용서의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소설은 2019년 6월15일부터 같은 해 9월15일까지 석 달 동안을 배경으로 삼으며, 1991년 3월 에이바의 죽음과 이듬해 4월 로드니 킹 사건에 이은 엘에이 폭동이 짤막하게 복기된다. 2019년 현재 시점에서 에이바의 친동생인 숀은 감옥에 갇힌 사촌형 레이의 집에서 지내며 형의 식구들을 돌본다. 레이와 숀은 청소년기부터 크고 작은 범죄에 연루되어 교도소를 들락거렸으나, 숀 자신은 이제 이삿짐센터 직원으로 성실한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반면 마흔네 살인 레이는 10년의 옥살이 끝에 출소한다. 집에 돌아온 그가 식구들과 함께 둘러 앉은 식탁에서 “이 집을 지켜 주소서, 주여. 어떤 것도 저희를 흩어지게 마옵소서”라 기도하는 장면은 소설 제목과 연결되며 소설 후반부의 반전을 예고하는 복선으로도 구실한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그레이스 박은 약학대학을 나온 뒤 부모 폴과 이본의 약국 일을 돕는다. 언니 미리엄은 2년 전 석연찮은 일로 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진 뒤 부모와 절연한 채 따로 살고 있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1991년 장면에 이어지는 제1장에서 그레이스와 미리엄 자매는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흑인 소년을 추모하는 집회에 참가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역시 흑인 인권 시위 현장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수미쌍관 구조를 지니는 셈이다. 레이의 십대 딸인 다샤는 백인 기자가 가족을 초대한 식사 자리에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가기도 하는데, 소설 도입부와 종결부가 마찬가지로 흑인 인권 시위 장면이라는 사실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권익이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이들이 미국에서 자라도록 큰 희생을 치렀다. 폴과 이본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80년대에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지만, 거기 계속 살았다면 더 편했을 것이다. 폴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라는 좋은 직장에 다녔다. (…) 날마다 한 푼 두 푼 모아 그들은 타지에 새 삶의 터전을 지었고, 그 덕분에 그레이스와 미리엄이 자유롭고 편안한 미국인으로 자랄 수 있었다.”
소설에 묘사된바 폴과 이본은 한인 부모의 전형을 보여준다. 자식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 사랑이 그들의 몫이다. 부모와 절연한 딸 미리엄의 생일에 맞추어, 주인공이 없는데도 미역국을 끓여 식탁에 올리는 어머니를 두고 그레이스는 “자기학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 수치스러울 정도의 애정”이라며 질색하지만, 어머니의 행위에 그레이스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깔끔하고 조용하던 집은 귀신 들린 집, 아무도 모르는 폭력이 일어나는 집처럼 느껴졌다.”
소설 중반부에서 이야기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고, 결정적인 비밀을 마침내 알게 된 그레이스의 눈에 비친 집의 변모다. 힙합 가수 토디 티의 노래 가사에서 가져온 책 제목에 곧바로 연결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레이스와 숀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서로 무관하게 진행되지만, 중반부의 결정적 사건을 계기로 충돌과 습합이 불가피하게 된다. 1991년과 2019년의 두 사건 역시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한 몸으로 뒤섞인다. 숀의 가족 중 실라 이모는 라타샤 할린스의 이모인 데니즈 할린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인물이라고 작가는 밝혔다. 실라 이모는 일종의 대모신 같은 캐릭터로, 붕괴 위기인 가족을 건사함은 물론 선한 영향력을 바깥 사회에까지 끼친다. “실라 이모는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자기 아픔의 뿌리를 뽑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을 만들었다”는 숀의 진술은 실라의 사람됨의 핵심을 가리킨다.
한인과 흑인 가정을 아우르며 1991년과 2019년에 걸친 소설의 서사는 가해와 피해가 엉키고 섞이며 폭력과 사랑이 한데 들끓는 용광로와도 같은 대폭발로 이어진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청 앞 주기(州旗)가 불타는 장면이 상징하듯 소설의 마지막은 불가피하게 또 다시 폭력과 혼란이지만, 그것은 “재생”을 위한 “파괴의 약속”이라는 것이 작가의 낙관이다. 그러나 그 낙관이 결코 손쉬운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 역시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질문을 보라. “하지만 새로운 도시는 어디 있을까? 그리고 누가 선한 사람들일까?” 그 질문은 책을 덮는 독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옮겨온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