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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애서가를 위한 ‘책’ 아닌 ‘책꽂이’에 관한 모든 것

등록 2021-04-30 05:00수정 2021-04-30 09:15

사슬로 묶어놓은 독서대부터 세로로 꽂는 책장까지
기술·문명 발전 따라 늘어나는 책 보관법의 역사

책이 사는 세계: 책, 책이 잠든 공간들에 대하여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서해문집·1만8000원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방, 벽을 채운 책꽂이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 자신이 좋아하는 재질의 넓은 책상…. 애서가들이 꿈꾸는 ‘서재’의 모습일 것이다. 서재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 없이 책이다.

<책이 사는 세계>는 다르다. 주인공은 책이 아니다. 책꽂이다. “책꽂이 선반 위의 책은 꺼내서 읽어야 하는 것이다. 책 밑의 선반은 설치되고 나서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 그러나 사람이든 사물이든, 지위고하에 관계 없이 할 이야기 또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600여쪽에 걸쳐 연필의 모든 것을 다뤘던 <연필>의 저자 헨리 페트로스키가 썼다.

책은 기본적으로 연대기적 서술을 뼈대로 한다. 고대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책꽂이가, 조금 더 넓힌다면 책꽂이를 비롯해 책을 보관하는 방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눈 앞에 책꽂이가 있다면 잠깐만 눈을 들어 바라보자. 긴 수직의 판 사이에 수평의 선반 몇 개가 걸쳐 있을 것이다. 선반 위에는 제목과 저자가 인쇄된 책등이 보이게 책들이 수직으로 나란히 꽂혀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책 보관법은 현대인에게 당연해보이지만 실제는 수백년도 되지 않은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묘사한 그림. 수평으로 보관된 두루마리들을 볼 수 있다. 서해문집 제공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묘사한 그림. 수평으로 보관된 두루마리들을 볼 수 있다. 서해문집 제공

잘 알려져 있듯 초기의 책은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 형태였다. 두루마리는 둘둘 말아 끈으로 묶어서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서로 연관된 두루마리들은 모자상자 비슷한 상자에 함께 세워놓기도 했다.

4세기 초까지 책의 형태는 두루마리에서 코덱스(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접어서 꿰매 철을 한 것)로 넘어갔다. 이 당시 책은 모두 손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귀한 물건이었다. 수서를 제작하고 보관하던 곳은 수도원이었는데 일반적인 수도원은 코덱스 수십권 정도를 소장하는 게 다였다. 책을 보관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장이나 궤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두는 것이었다.

중세의 책 보관은 점차 ‘독서대 시스템’과 ‘쇠사슬에 묶인 책’으로 발전해갔다. 길고 경사진 독서대를 놓고 책을 진열하는 방식이다. 읽기에 적당한 높이와 각도로 책을 올려놓고, 그 자리에서 펼쳐 읽을 수 있게 했다. 앞에 의자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책은 제자리에서 옮기지 못하게 사슬로 독서대에 묶어놓았다. “1418년 케임브리지대 피터하우스에는 총 302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중 143권은 사슬에 묶여 있었고, 125권은 ‘연구원들 사이에 나뉘어 맡겨졌고’ 나머지 책들 가운데 ‘일부는 팔려는 것이었고 일부는 궤에 쌓아둔 것’이었다.” 

15세기 중반 금속활자와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책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좋은 책이 100권 정도의 필사본으로 존재하고, 기껏해야 1000명이 그것을 읽던 중세와는 달리 15세기 중반 이후에는 한가지 책이 수천 권씩 존재했으며 수십만명이 그것을 읽었다.” 소장도서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독서대 시스템은 압박을 받게 된다. 방 전체가 독서대로 꽉 차고, 독서대는 또 책으로 꽉 차게 됐기 때문이다. 책을 놓는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경사진 독서대의 위나 아래에 수평 선반을 덧붙이게 됐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책장으로 진화하는 첫 단계다.  

1571년에 문을 연 플로랑스 메디치 도서관의 독서대를 그린 그림. 책들이 독서대에 사슬로 묶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해문집 제공
1571년에 문을 연 플로랑스 메디치 도서관의 독서대를 그린 그림. 책들이 독서대에 사슬로 묶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해문집 제공

16세기 말에는 ‘진열대 시스템’으로 불리는 형태로 변해갔다. 두 개의 독서대 책상 등을 맞대 놓고 사이에 선반을 설치해 책을 놓는 것이다. 처음에는 선반에 책을 계속 수평으로 쌓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을 수직으로 꽂게 됐다. “언제 어떻게 서가에 책을 수직으로 꽂게 되었는지는 아마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하면서 책을 보관할 공간이 늘어났고, 책을 뽑을 때 큰 힘을 들이지 않게 됐다.” 종교개혁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책장을 선택했다. 책을 이용하는 것이 점점 쉬워지면서 책을 독서대에 묶어놓고 그 앞 의자에 앉아 읽어야 할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17세기 이후에는 ‘벽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책장들이 벽에 평행하게 붙어 배치되는 방식이다. 벽시스템은 공공도서관의 참고도서실이나 열람실, 개인서재 등에서 표준적인 서가 배치 방식이 됐다.

책등을 바깥쪽으로 꽂는 방식 역시 16세기 무렵부터 시작됐다. 그때서야 책등에 제목과 저자 이름, 출간 연도 등을 적게 됐고, 책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모양도 비슷해지면서 책을 구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책꽂이의 역사는 문명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점점 늘어나는 책들을 한정된 공간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수용하느냐의 역사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영국박물관 도서관의 서고. 바닥이 쇠살대로 이뤄져 있고 통로가 넓어 천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낮은 곳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서해문집 제공
영국박물관 도서관의 서고. 바닥이 쇠살대로 이뤄져 있고 통로가 넓어 천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낮은 곳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서해문집 제공

20세기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책의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책이 가득 찬 도서관에 추가로 선반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책이 전자화되면 공간 부족 문제는 해결이 될까. 저자는 “앞으로 수십년은 지나야 컴퓨터와 함께 성장한 세대가 종래의 책을 완전히 버리고 전자화된 책을 택할지 아닐지가 결판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이외에도 제본의 발달, 서점에서의 책의 배치, 열람실과 구분된 서고의 탄생과 도서관의 진화, 가정 서재에서의 장서 문제 등 책의 보관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장서가들에게는 부록 ‘책을 배열하는 온갖 방법’도 흥미를 끌 만하다. ‘저자 이름 순서에 따라’ ‘주제에 따라’ ‘제목 순서에 따라’ ‘크기에 따라’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양장본과 페이퍼백을 별도로’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구분’ ‘즐겨 읽는 정도에 따라’ ‘감정적 가치에 따라’ 등등.

책 자체에 대한 책을 기대했다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보통은 무시하고 지나치게 마련인 책꽂이에 관심을 기울이면 책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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