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책에 얽힌 여러 보람 중 하나는, 때때로 지평을 넓혀갈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권의 책에서 다른 사람과 책으로, 속된 말로 ‘새끼를 쳐’ 나가는 거죠. 그렇게 만나는 면면들은 간혹 굵직한 줄기로 뻗어나갑니다.
이번주 ‘책&생각’ 표지기사를 준비하며 <1991, 봄>을 읽다가 서준식 선생을 만나게 됐습니다.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1971년)으로 알고 있던 서 선생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1968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했는데, 형 서승(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교수)과 함께 투옥되어 ‘사상 전향’을 거부한 탓에 17년을 복역했습니다. 출소 이후 인권운동사랑방을 만들었죠. 서 선생은 김기설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누명을 뒤집어쓴 강기훈을 오랜 시간 도왔습니다.
서 선생의 동생 서경식(일본 도쿄경제대학 교수)은 1970년대 말 감옥에 있는 형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고 <소년의 눈물>(돌베개·2004)에 적었습니다.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 독서를 통해 ‘해야 할 일’에 주목한 것입니다. 그가 강조한 독서 행위는 당시 그의 상황과 신념에 겹쳐보면 더욱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즐거움은 사치였겠죠. 형의 편지를 읽은 동생은 독서를 이렇게 정의하게 됩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불의와 두려움에 맞선 ‘인간 정신’을 책과 글에서 무수히 목격한 한 주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갈다(연·硏) 못해 뚫는(찬·鑽) 지경에 이르는 독서와 정신적 투쟁이란 무엇인지, 한동안 깊이 곱씹어봐야겠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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