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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고장난 미국 자본주의, 어떻게 고쳐 쓸 것인가

등록 2021-05-21 04:59수정 2021-05-21 10:25

지난 40년간 성장률 둔화하고 소득·부 불평등은 심화돼
정부 역할 강화로 사회정의 보장하는 새 규칙 만들어야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공정한 경제는 불가능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박세연 옮김/열린책들·2만3000원

불평등, 세계화 등의 문제를 천착해온 미국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석좌교수가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를 내놨다. 스티글리츠는 ‘감사의 말’에서 이번 저서는 그동안 세계화, 불평등, ‘경제 성장의 진정한 원천’, 경제정책과 금융을 다뤘던 자신의 여러 저서와 논문을 기반으로 그 아이디어를 하나로 엮은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먼저 스티글리츠는 미국이 당면한 경제적 문제점을 성장 둔화와 불평등 심화라고 진단한다. 1947년부터 1980년 사이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3.7%였다. 이는 1980년부터 2017년까지 2.7%로 낮아졌다. 줄어든 성장의 과실마저 상위계층의 소수에게 돌아갔다. 노동자 계층이 가져가는 몫은 1980년 75%에서 2010년 60%로 하락했다. 반면 상위 10%와 1%, 0.1%는 국가 전체의 파이에서 점점 더 많은 몫을 가져가고 있다. 부의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더 심각하다. 상위 1%가 미국 부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세 사람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대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대표의 자산을 합치면 미국 인구 하위 절반의 자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이런 ‘실패’의 주 원인 중 하나는 시장 지배력 증가다. 각 시장마다 경쟁자 수가 줄어들거나 매출이 몇몇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은 더 높은 가격을 부과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가로챔으로써 소비자를 착취한다. 또한 시장 지배력은 기업이 임금을 낮추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력을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근로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도록 허용한다.” 이는 부를 진정으로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부를 뺏어오는 것이다.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는 이유는 기존 기업들이 진입장벽을 높여 새로운 경쟁자들의 진입을 막기 때문이다. 특허 시스템을 남용하고 신생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것도 경쟁을 무력화하는 방법들이다. 시장 지배력의 증가와 함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세계화와 고삐 풀린 금융화도 미국 경제 실패에 일조했다. 게다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신기술의 발전은 이런 경향을 더 악화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 이런 흐름을 막고 성장을 촉진하고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스티글리츠는 정부가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시장이 그 자체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며, 따라서 시장이 그 놀라운 힘을 발휘해서 경제를 성장시키도록 내버려 둘 때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트리클다운 경제)는 주장”, 즉 ‘시장 근본주의’(혹은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정책 의제들도 제시한다. 사회기반시설과 기초연구에 대한 공적 투자,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새로운 산업정책 모색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실업보험 같은 사회적 보호의 확대, 높은 수준의 무상 공교육 추진 등.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고용에 대한 정부 역할이다. “평등과 성장, 효율성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완전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부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동원해 경제를 완전고용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완전고용이 시장에서 달성되지 못한다면? “대안이 있다. 정부가 직접 근로자를 고용해야 한다. 21세기 미국 사회는 새로운 권리, 즉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모든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시장은 그 자체로 ‘사회정의’와 ‘기회’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분배(사전분배)와 재분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우선 시장소득의 분배가 최대한 평등하게 이뤄지도록 애써야 한다. 기업의 독점력을 억제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을 막고, 최고경영자의 과도한 보수를 차단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개선된 노동법을 통과시키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의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이런 노력에도 시장소득의 불평등을 완전히 억제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더 강력한 누진세와 양도세, 공적 지출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수준을 평등하게 만드는 재분배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의 재원 마련을 위해서도, 역동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도 조세 시스템은 중요하다. 기업과 부유한 개인에게 제대로 과세하는 것은 기본이다. 스티글리츠는 여기에 더해 부동산으로 벌어들인 소득에는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지에 대한 자본 이익과 지대에 대한 세율을 인상함으로써 더 많은 저축이 생산적인 자본으로 흘러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아메리카 드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21세기 사회 계약’을 새로 맺어야 한다. “시장은 인간이 구축하는 것이다. 지난 40년에 걸쳐 우리는 성장을 느리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재구축했다. 우리는 인구의 대다수에게 봉사하지 않은 형태를 ‘선택’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규칙을 새롭게 써서 경제가 사회를 위해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또한 이 규칙을 마련하는 것은 결국 ‘정치’라고 스티글리츠는 강조한다.

원서가 2019년에 나온 탓에 그 뒤 있었던 굵직한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쉽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들어 있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정책 변화 등은 다뤄지지 못했다. 미국 상황을 중심으로 책이 전개되고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식 자본주의’와 ‘시장 근본주의’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석학이 제시하는 대안적 이념과 정책들은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lt;불만 시대의 자본주의&gt;에서 미국 자본주의가 성장둔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문제를 겪고 있다며, 정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자본주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 지역 한 상가 유리창에 폐업 세일 표지판이 붙어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미국 자본주의가 성장둔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문제를 겪고 있다며, 정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자본주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 지역 한 상가 유리창에 폐업 세일 표지판이 붙어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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