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1만5800원
쾌적함을 주는 소설가, 프레드릭 배크만. 현학적인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글, 쉬운 단어로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을 통해 스웨덴의 한 블로거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위대한 문학은 포기했다”는 말로 자신의 ‘한계’를 가볍게 내보이는 태도까지. 어쩜, 모든 게 상쾌하다! 자신의 색깔뿐 아니라 한계까지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더 신뢰하게 된다.
첫 소설 <오베라는 남자>(2012)가 전 세계에서 1300만부 팔리며 단숨에 스타 작가가 된 그의 새 장편소설 <불안한 사람들>이 번역돼 나왔다. 배크만 소설이 환호받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장식이 거의 없는 극도로 간결한 스타일. 이런 문체는 전통적으로 자기 성찰에 사용돼왔다. 삶처럼 복잡한 주제를 드러내는 데 그 유용성을 검증받은 문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유머와 다정. 이런 주특기를 그대로 살려 이번에 그려낸 인물은 ‘불안한 사람들’이다.
새해를 이틀 앞둔 날, 은행에 강도가 든다. 권총을 들긴 했으나 장난감 권총이고, 돈을 원하긴 했으나 6500크로나, 한국 돈으로 ‘겨우’ 88만원 정도를 털러 간 불안불안한 강도. 그 은행이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은행인지도 몰랐던 그는, 경찰이 오는 소리에 옆 아파트 매매 현장인 오픈하우스로 도망간다. 아파트를 구경하러 와 있던 이들은 얼떨결에 인질이 돼버리고, 이 강도는 인질범이 되고 만다. 아파트를 사서 가격을 올려 되파는 중년 부부, 출산을 앞두고 사사건건 부딪치는 젊은 부부, 오만한 은행 간부, 듣기보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부동산 중개업자, 무슨 말에도 놀라지 않는 아흔 살 노인까지. 심약한 강도와 기 센 인질들의 코미디 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이들의 긴 대화 속에서 막지 못한 죽음, 트라우마, 배신, 고립 등 과거 경험에 불안하게 매달린 현재의 삶들이 불려 나온다. 어떻게? 의기소침은커녕, 신나게 춤추듯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네 단어” 때문이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었어요.” 이제 당신도 다음 스텝을 밟아보시기를, 이런 문장을 만나거든. “흔히 인간의 성격은 경험의 총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과거가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저지른 실수들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선택,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전부라고 말이다.”
석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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