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2017). 참 잘 지은 제목입니다. 묵직한 화두를 던졌더랬죠. 공동체, 사회연결망을 통해 사람의 건강을 탐구하며 함께 고민해 나가자는 지은이의 태도가 무척 신선했습니다. 제목이 좋다는 것은, 곱씹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거듭 웅얼거리며 되뇝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고통을 잘 겪어내어 길을 열어간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러니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넘어서지 못한다 해도 어떻게 아파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겠죠.
이번 ‘책&생각’에서 잠깐독서 꼭지에 소개한 <봄을 기다리는 날들>(창비)을 읽다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고 속으로 말해봤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연로한 부모와 젊은 아내, 어린 네 남매를 두고 긴 세월 옥에 갇힌 안재구 선생에 마음을 겹쳐 봤던 것입니다. 남편을, 아버지를 빼앗긴 심정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엮은 둘째딸 안소영 작가의 글이 마주쳐 왔습니다.
“슬픔을 견디기 힘들 땐/ 더 큰 슬픔을 생각하고,/ 더 큰 슬픔을 견디기 힘들 땐/ 무너질 듯한 슬픔을 생각하고,/ 무너질 듯한 슬픔을 견디기 힘들 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라.”
1987년 1월 고향에 머물다 서울로 돌아온 친구와 “과감하게” 술 한잔하러 들어간 주점은 “방학도 아랑곳없이 붐비는 곳, 젊음의 열기가 가득했”는데 “그 분위기에 휩쓸리다가도 왠지 그 속에서 슬퍼질 때가 있”다고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에 털어놓습니다. 딸은 주점에서 이 글귀를 발견합니다.
고통을 겪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에 대처하는 자세와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은 아니라 해도, 자신과 나아가 주변까지 망가뜨리는 실패자의 모습은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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