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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음식과 꽃이름, 그리고 ‘요’

등록 2021-05-28 04:59수정 2021-05-28 09:58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파드득나물밥과 도라지꽃

구효서 지음/해냄·1만4500원

구효서(사진)의 소설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는 작가가 새로 기획한 경장편 시리즈의 첫 권이다. 특별시나 광역시 같은 큰 도시가 아닌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음식과 꽃 이름을 부제로 삼으며, 제목이 ‘요’로 끝나는 열 권 정도의 소설을 쓰고자 한다고 작가는 밝혔다.

‘파드득나물밥과 도라지꽃’을 부제로 내세운 이 소설의 무대는 강원도 평창의 펜션 ‘애비로드’. 이 펜션의 주인 난주와 딸 유리, 펜션 이웃에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는 서령과 이륙 부부, 그리고 펜션 손님인 89살 미국 할아버지 브루스와 그보다 서른다섯 연하인 한국인 부인 정자의 이야기가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며 꽃인 듯 피어난다.

두 달 뒤면 만으로 여섯 살이 되는 유리는 그렇게 “될락 말락”인 상태가 간지럽다며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소개팅에 나가 만난 남자와 스파게티를 먹고 아포가토를 마신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들려주고,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니 베빈다의 파두를 떨림과 장식이 심한 창법으로 너끈히 소화해 불러서 ‘어른 유령’ 소리를 듣는다. 상품 판매용이나 개인 홍보용 선전물의 녹음을 해주는 ‘길거리 아나운서’ 이륙과 그의 목소리에 끌려 결혼한 서령 부부는 구입한 땅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이 있어서 골머리를 앓는다. 브루스의 간에 심각한 병증이 진행 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들은 뒤 충동적으로 한국행을 결행한 브루스와 정자 부부는 수십년 만의 한국 여행에서 애써 잊고 있던 상처와 트라우마를 대면한다.

“슬픈 사람이 더 슬픈 사람 안아줄게.” “그럼 전, 좀 울게요.” 소설 중후반부에서 난주와 서령이 나누는 대화에서 보듯 등장인물들은 너나없이 슬픔과 아픔을 안고 있다. 이 대목 역시 소설 제목과 연결되지만, 더 직접적으로 제목을 낳은 것은 ‘파드득나물’이라는 발음이 환기시키는 오래된 기억을 좇아 한 마을을 찾은 브루스가 치매에 걸린 마을 노인에게 질문을 건네는 장면이라 하겠다. “저…옆에 앉아서 좀…울어도 될까요?” 브루스의 이런 질문과 그에 이은 흐느낌이 무엇 때문인지는 소설을 읽는 독자가 확인할 몫으로 남겨 두도록 하자. 난주의 슬픔과 서령의 더 큰 슬픔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서령과 이륙 부부의 무덤 건은 어떻게 귀결될지, 유리 안의 ‘어른 유령’의 정체는 무엇인지도 마찬가지. ‘돼지고기활활두루치기’며 ‘곰취막뜯어먹은닭찜’ 같은 난주의 독창적인 메뉴와 너른 품이 산만하고 어지러운 사연들의 중심을 잡아 준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구효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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